한강대교를 건너다보면 나타나는 기다란 타원형의 섬. 휘황찬란한 계획이 세워졌다가 무산되기만도 벌써 여러 차례인 논쟁적인 섬. 노들섬이다. 2012년, 그간의 사업을 전면 중단하고 텃밭으로 임시 활용하면서 잠시 접어두었던 노들섬의 이야기가 다시 펼쳐지려 한다.
지난 12월 20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는 서울시와 노들섬 포럼의 공동주최로 노들섬의 활용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시민 공개토론회가 개최됐다.
서울시는 이날 토론회에 앞서 2012년 8월부터 각계 분야의 전문가 23인을 노들섬 포럼 위원으로 위촉하여 노들섬에 대한 활용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해왔다. 지금까지 열린 네 차례의 포럼을 통해 노들섬 활용의 기본 원칙과 방향을 수립한 상태이며, 이번 토론회는 그간의 경과와 추진 내용을 시민에게 공식적으로 공개하는 첫 번째 자리였다.
두 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토론회는 노들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짚어보는 3인의 주제발표와 관련 분야 전문가 6인의 토론 및 질의응답으로 구성됐다. 모두가 함께하는 논의의 장이라는 개최 취지에 맞게, 전문가는 물론 노들섬에 관심 있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들어볼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노들섬의 형성과 근현대기 변화
첫 주제발표에서는 안창모 교수경기대학교가 노들섬의 역사와 변천 과정을 설명하며, 노들섬의 과거를 되돌아봤다.
본래 노들섬 일대는 동서로 동부이촌동에서 서부이촌동까지, 남서로 이촌동부터 현대 노들섬이 자리한 곳까지 이어지는, 총면적 백만 평의 광활한 모래벌판이었다. 이름도 모래밭 마을이라는 뜻의 ‘사촌’. 때문에 조선 시대부터 많은 이들이 한강을 구경하러 이곳을 찾았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의 대표적 휴양지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1917년, 일제가 한강 북단의 이촌동과 남단의 노량진을 잇는 인도교를 놓으면서 이곳의 모습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다리 높이까지 흙을 쌓아올린 뒤 그 언덕을 중지도라고 명명한 것이다. 지명에 섬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시기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노들섬은 여전히 다리를 통해 걸어서 드나들 수 있었다. 그 풍경이 다시 한 번 확 달라진 것은 1973년. 서울시가 중지도 매립 공사를 추진하면서부터다. 이 공사로 인해 주변 모래밭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강물이 들어오면서 ‘진짜 섬’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섬 주변 모래더미들도 1982년 제2차 한강종합개발 시 미관상의 이유로 치워지고, 섬 둘레에 시멘트 둔치까지 생기자 옛 모습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오늘날의 노들섬은 바로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한강 예술섬 이후 현재까지의 노들섬 추진경과
다음 발표는 박현찬 연구원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이 이어갔다. 한강 예술섬 조성이 논의되기 시작한 2005년부터 사업을 전면 중단한 2012년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보고, 노들섬의 활용방안을 보다 전문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지난 해 발족한 노들섬 포럼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지난 7년간 노들섬은 ‘한강 예술섬 조성’이라는 명목하에 많은 사업이 추진된 바 있다. 시작은 오페라 극장과 심포니 홀, 청소년 야외 음악당을 포함한 ‘노들섬 문화단지’의 조성이었다. 2005년 1월 계획을 수립한 뒤, 같은 해 6월 274억 원을 들여 노들섬을 매입하고, 곧이어 청소년 야외음악당 건립을 위한 국제 공모를 개최한 것이다.
그러나 노들섬의 개발방향에 부합하지 않는 과도한 설계안들이 제출되어 공모는 무효화 되고, 이 과정에서 노들섬 문화단지를 민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결정하면서 기존 계획은 백지화된다.
2012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노들섬은 또 한 번 변화의 국면을 맞게 된다. 현실성 있는 재정확보 방안이 마련되고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때까지 모든 사업을 보류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노들섬은 2012년 8월부터 현재까지 텃밭으로 임시 활용되고 있다. 서울 중심에 위치한 소중한 녹지공간이라기에는 일부만이 활용하는 상당히 일차원적인 활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