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모더니즘 건축 최후의 거장으로 꼽히는 루이스 칸. 그의 타계 50주년을 맞아, 루이스 칸의 삶과 건축을 되돌아보는 평전 ‘루이스 칸: 벽돌에 말을 걸다’가 출간됐다. 미국 계간 문예지 ‘스리페니 리뷰’의 편집장인 웬디 레서의 시선으로, 루이스 칸의 삶을 조명하고 건축 철학을 살피는 책이다.
개인의 인생을 정리한 전기이지만, 주인공을 무척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덕에, 65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글은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읽힌다.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는 여느 평전들과는 달리, ‘죽음’에서 시작하여 ‘출생’으로 끝을 맺는 독특한 구성 덕분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역순의 구성, 즉 회귀적 구성은, ‘존재의 시작’과 ‘근원’을 강조했던 루이스 칸의 생각과 신념이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생전 그는, 건축에 있어서 위대한 구조물을 마주할 때 상기하게 되는 시간성, 즉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강조했었는데, 바로 그와 같은 느낌을 장 구성을 통해 재현한 셈이다.
저자는 이러한 역순의 구성 방식으로 루이스 칸의 일생을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눈 뒤, 문헌과 기록 자료, 일기와 메모, 인터뷰를 비롯한 방대한 양의 자료를 통해 그의 생애와 업적을 복원한다. 또한 매 장에는 루이스 칸의 대표작 다섯 곳(소크 생물학 연구소, 킴벨 미술관, 필립스 엑서터 도서관, 방글라데시 국회 의사당, 인도 경영 연구소)을 직접 방문하고 작성한 에세이가 포함되는데,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그려진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건물의 내·외부를 함께 걷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에세이를 통해 건물을 경험하고 그 구조에 다가감으로써 ‘시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존재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루이스 칸이 생전 설계한 건축물의 수는 235개, 그중 실제 지어진 건축물의 수는 81개다. 그의 대표작으로 회자되는 숫자는 그보다 더 적다. 그러나 그가 구상한 설계안과 그것을 바탕으로 실현된 건축물에는 그가 건축가로서 이어 나간 사유와 고민이 온전히 담겨 있다. ‘킴벨 미술관’ 고측창으로 새어드는 빛과 그 빛이 드리운 그림자, ‘필립스 엑서터 도서관’의 공간 구조에서 자극되는 감각처럼, 공간을 마주하며 경험하는 극적인 순간들은 루이스 칸이 건축을 통해 통찰하고자 했던 것들의 다양한 유형이다. 그것은 과거의 시간에 갇혀 있지 않다. 그가 남긴 건축 공간들은 시대를 초월해 영속된 시간 속에 여전히 유효하다.
책은 루이스 칸의 천재적인 재능과 업적,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이외에도, 그 이면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이야기까지도 모두 조명한다. 그의 빛과 그림자를 집요하게 파고든 이 책과 함께 그의 건축 세계를 새롭게 마주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