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길로 통한다
예로부터 동아시아의 도시들은 서양의 도시와 비교해 가장 큰 차이를 광장의 존재 유무에 두었다. 개념상 광장이란 용어가 없었을 뿐 그 기능은 모두 길이 책임을 졌다. 도시에 개설된 길이야말로 물자와 사람의 이동을 위한 통로였을 뿐만 아니라 도시에 거주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분출하는 욕구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광장이 면적인 요소라면 길은 당연히 선적인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의 도시에서 길은 서로를 연결하는 선적이면서도 장소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 면적인 포용력이 큰 독특한 성격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통감절요』에 나오는 “해납백천(海納百川: 바다로 모든 것이 귀결된다)”이란 표현에 제대로 어울리는 장소였다.
이러한 점은 조선의 수도 한양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 한양의 길 위에서 일어난 사건을 열거하자면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한양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모두 반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기록이 오늘의 우리 손에까지 닿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결국 우리가 한양을 이해하는 한계에 봉착하게 하고 만다. 이미 한양에 관한 수많은 연구 성과가 쌓여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가 한양이라는 도시 공간을 생소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건축역사학의 경우에는 그것이 더욱 제한적이다. 성곽과 궁궐, 종묘를 비롯한 유교적인 의례 건축 등 주요 시설이 논의의 대상이 되었을 뿐 그 영역을 더욱 넓혀 도시를 촘촘히 파악하지 못하는 답답함은 거대한 산맥 앞에 가로막힌 왜소한 인간의 모습 바로 그 심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도서출판 집에서 기획해 출간한 김동욱 교수의『서울의 다섯 궁궐과 그 앞길』은 제목에서 이미 표방하듯 한양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연결하는 길의 상호 관계를 다루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아니 애써 외면했던 부분일 수도 있는 궁궐 담장 밖 몇 발자국의 외부 공간을 심층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동시대를 사는 후학 역시 자료의 한계를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김동욱 교수에게는 그것이 도전할 대상이 되었고 대다수 후학에게는 멈춰 서게 하는 장애물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 책도 속 시원히 그간의 아쉬움을 털어내 주지는 못한다. 또한, 시간적으로 다소 무리를 해 조선 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급은 하고 있으나 역시 핵심은 조선 시대에 가 있다. 일정한 부분은 이미 알려진 내용을 중언부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궁궐 밖 한 치 밖의 공간을 바라보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양 도시 건설의 꽃은 종로의 개설이다. 종로야말로 궁궐과 같은 상투적인 건축 행위가 아닌 한양 도시 건설의 핵심임에도 아직 이 부분에 힘이 실린 논문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퇴고하는 학문의 태도야말로 후학이 선학에게 배워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덧붙이면 우리 건축역사학계의 원로로서 학문을 하는 자세가 무엇인지 후학들에게 몸소 실천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경기대 김동욱 명예교수가 이 책을 통해 후학들에게 당부하는 사자후는 “한양이란 도시 공간을 역동적으로 바라보라”는 건축과 도시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글 / 한동수 한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