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베이징, 파리, 로마는 역사 도시이기는 하지만, 전란과 근대화의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반면, 역사가 짧다고 생각하는 뉴욕은 1811년 맨해튼 격자 망이 수립된 이후, 한 번도 이렇다 할 만한 시련을 겪지 않고 차곡차곡 자신만의 역사를 쌓아왔다. 그렇기에 뉴욕에서는 200여 년에 걸쳐 이루어진 도시계획의 힘을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가장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다.
뉴욕에서 실무를 하고 있는 도시설계가와 맨해튼으로 연수를 온 기자가 만나, 뉴욕이라는 도시의 면면을 깊이 있으면서도 쉽게 설명하는 책이 출간됐다.
격자형 가로망으로 이루어진 뉴욕의 도시구조는 매우 반복적이며 단순하지만, 그 내부에는 놀라운 정도의 다양성이 담겨있다. 이 책은 센트럴파크, 5번 애비뉴, 타임스퀘어, 트리니티 묘지, 미트팩킹 지구, 록펠러센터 등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건물과 지역들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뻔한 장소 소개가 아니라, 맨해튼 5번 애비뉴는 스스로 만든 규제로 아름다운 질서를 구축했기에 지금의 모습이 될 수 있었다는 등의 익숙하지 않은 설명을 덧붙여 뉴욕이라는 도시에 대한 흥미를 더한다.
이러한 명소 외에도, 뉴욕은 현재 우리가 원하는 좋은 보행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걷기 좋은 도시가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니다. 큰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도 시민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다양한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공감대를 마련했고, 교통국은 무리하게 영구적 시설을 설치하기보다는 예술가의 참여를 통해 임시성, 가변성, 유연성이 있는 변화로운 정책을 펼쳤다. 브로드웨이 보행 플라자에 있는 임시 구조물과 흥미로운 그림들은 도시 정책이 축제의 형태로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작은 변화들이 쌓여 새로운 도시의 형태를 만들어낸 뉴욕은, 세계적인 도시를 만든다는 미명 하에 각종 대규모 사업으로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다 갈 길을 잃어버린 서울에 교훈을 주고 있다. 과자 공장에서 종합 쇼핑몰이 된 ‘첼시마켓’이나, 용도 폐기된 철로를 공원으로 바꾼 ‘하이라인’은 서울역고가 공원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이 눈여겨봐야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 책과 함께 새로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 시민과 상인, 정부가 함께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낸 작은 노력의 흔적들을 찾아나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