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 아파트
내 집에 대한 애착은 만국 공통의 것일 테지만 요즘 대한민국의 ‘집’에 대한 관심은 좀 특별한 수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고 일어나니 집값이 올라있더라는 얘기가 매일같이 들려오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은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릴 지경이다. 이렇게 집이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자 정부는 더욱 공격적으로 아파트 공급에 나섰다. 수도권 30만 호, 전국 80만 호. 숫자상으로도 어마어마하다. 아마 이 아파트들이 다 지어지고 나면, 도시 풍경이 커다란 아파트 단지 풍경과 다를 바 없어지지 않을까.
이렇듯 명실공히 ‘아파트의 시대’인 2021년 봄, 흥미롭게도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인 1930년대 역시 ‘아파트의 시대’였다고 말하는 책이 출간됐다. 주거문화사, 아파트 설계, 아파트 단지와 건축 공간이라는 각기 다른 주제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네 명이 공동 집필한 ‘경성의 아파트’다.
1930년대 식민지 대도시 경성에는 얼마나 많은 아파트가 지어졌을까? 어느 곳에 많이 있었을까? 당시 사람들은 아파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무슨 일을 하는 어떤 사람이 아파트에 살았을까? 경영 주체는 누구였을까? 어느 정도 규모였을까? 네 명의 저자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경성의 아파트에 관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국내외에 산재해 있는 각종 사료들을 샅샅이 분석한다.
주거문화사에 주 관심을 두고 있는 박철수는 아파트가 본격 도입되기 시작한 1930년대의 사회문화사와 주거문화사를 중심으로, 설계사무실에서 아파트 설계를 하고 아파트를 주제로 논문을 쓴 권이철은 당시 아파트의 면모를 알 수 있는 각종 자료에 나온 도면과 사진 자료 분석 및 통계를, 미국에서 공부한 황세원은 해외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오오세 루미코는 1930년대 경성에서 여러 채의 아파트 임대 사업을 벌인 도이 세이치의 후손을 인터뷰하는가 하면 일본 구석구석 흩어져 있던 경성의 아파트 관련 자료를 발굴하고 분석했다.
그렇게 정리한 당시의 아파트에 대한 정보는 지금까지 들어볼 수 없었던 신선한 얘기들이다. 일례로 당시 아파트는 살림집 형태를 갖춘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독신자가 생활할 수 있는 1칸 방이었는데, 독신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이라는 인식 때문에 풍기 문란의 대명사로 지목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아파트는 대개 교통 여건이 좋은 도심에 4층 규모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졌으며 1층에는 오락장, 공동식당과 같은 공동시설을 두고 아파트 거주자는 물론 거주하지 않는 일반인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복합용도의 도시건축’이었다. ‘근대풍경의 요체’로 불린 평양 동정의 동아파트는 1층에 마켓이 있다는 것과 옥상테라스, 옥상전망대를 갖춘 최신식 시설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책은 당시 사람들의 아파트 인식, 주 이용자와 경영자의 면면, 아파트 시설과 규모 등의 기초적인 정보는 물론, 해방 후 아파트는 어떤 변화를 거쳤고 주 사용자는 누구였는지, 현재까지 남아 있다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도 추적한다. 경성에서 현재 서울로 이어지는 도시의 역사를 채우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70여 곳의 아파트를 찾아내어 그 면면을 살핀 네 저자의 집요한 추적의 결과물을 통해, 존재 자체로 너무도 익숙하여, 오히려 그 시작점이나 발전 과정은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아파트’의 이면들을 살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