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23-03-02
건축, 300년
영감은 어디서 싹트고 도시에 어떻게 스며들었나
길을 걷다 보면 ‘저 건물은 도대체 뭐지?’라는 궁금증이 들 때가 있다. 날카롭게 깎인 직육면체와 구름을 닮은 곡면 등, 불과 십 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모습의 건물들을 마주하게 될 때다. 그런데 그 수가 제법 많다.
평소에는 낯섦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만큼 친숙한, 그러나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낯선 형태의 건물들이 언제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 자리 잡게 된 걸까? 연이어 이런 궁금증도 든다. 대체 어떤 영감을 받아야 이런 건물을 설계할 수 있는 걸까?
영감은 어디서 싹트고 어떻게 도시에 스며들었는지, 그 답을 찾아가는 책 ‘건축, 300년’이 출간됐다. 저자는 3세기에 걸친 동서고금을 넘나들면서 건축물을 중심으로 현대 건축의 과거를 추적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빈의 맨홀’이라 평가받았지만, 모더니즘 건축의 시초가 된 ‘로스 하우스’부터, 기계와 같은 외관을 지닌 ‘퐁피두 센터’까지 건축가들이 왜 그런 건축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당대 사회적 맥락과 연결해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껏 그다지 관심 있게 다뤄지지 않았던 한국의 건축물도 함께 소개하며, 우리 주변의 건축물들을 세계 건축의 흐름 속에서 조망해 본다.
책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시대와 건축 양식에 따라 분류되는데, 1부 ‘함께 잘살아보자’에서는 모더니즘을, 2부 ‘다 같을 필요는 없다’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다루고, 3부와 4부는 각각 ‘틀 안에서도 다를 수 있다’와 ‘틀을 깨버리다’라는 타이틀 하에 해체주의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저자가 지난 3세기 동안의 건축을 정리하면서 꾸준히 강조하는 키워드는 건축 외의 ‘주변’이다. 건축의 사회적 맥락을 살피다 보면, 끝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사고방식과 그 근원에까지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탐색의 과정을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은 ‘부의 집중 현상’이 현대 건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라는 것. ‘부’가 집중될 때 건축의 장식적 요소가 늘어나고, ‘부의 집중’이 약해질 때 장식적 요소가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이러한 추세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도시에 대입해서 살펴본다. 현재는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부’를 뽐내는 독특한 현상이 포착되는데, 저자는 이를 ‘장식이지만 장식이 아닌 척하는’ 건축이 도시에 자리하고 있는 오늘의 도시 풍경으로 연결시킨다. 결국 ‘부의 집중’이 강화되는 시대적 흐름과 디지털 기술의 만남의 지금의 도시를 만드는 셈이다.
300년이라는 긴 시간이 담긴 이 책과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여행의 끝에는 건축과 도시에 대한 생각의 폭이 한층 넓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