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소원 기자
기사입력 2023-07-12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청계천 위쪽,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 잡은 북촌은 국내에서 드물게 한옥 주택이 면 단위로 보존되어 있는 동네다. 골목골목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옥뿐만 아니라 양옥부터 다세대주택, 다가구주택까지 자리해 우리나라 주거사에 등장하는 주택 양식을 한데 모아 놓은 듯하다. 게다가 유명 브랜드 상점이 곳곳에 들어서고, 삼삼오오 구경 온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저자 안창모는 북촌을 ‘권문세가의 땅이었지만 개화의 씨가 자라던 곳’이라고 말한다. 신흥사대부가 살았고, 조선말 갑신정변의 주역과 개화사상가의 집이 있던 곳. 이들이 살던 곳에 학교가 세워지고 서양식 의료기관 제중원이 처음 문을 열었다. 천도교 교주가 소유한 땅도 있었다니 동학사상을 이은 천도교가 뿌리내린 곳이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살기도 했다. 과거 서울시 북촌 살리기운동 당시 만든 왕복 4차선 북촌로는 일제시기에 그은 도로 계획선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때 도로가 확장되면서 일부 집이 헐리고 필지가 변형되어 지금의 북촌 풍경이 자리 잡게 됐다.
상업화 물결을 타고 커다란 주목을 받은, 이른바 ‘뜨는 동네’가 된 북촌. 2021년 이곳에 설화수 플래그십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1930년대 집 장수가 지은 한옥과 1960년대 부잣집의 요소를 간직한 양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전혀 다른 두 공간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공간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최욱이다. 최욱은 두 집을 가로막고 있던 옹벽을 허물고, 그 자리에 중정을 만들었다. 지하층 공간의 경계에 단을 설치해 하나씩 오르다 보면 어느새 양옥 건물 1층에 이른다. 이는 원지형의 구릉을 따라 공간을 경험하며 오르는 형태다. 저자의 표현대로면 ‘한옥이 도시와 만나는 방법을 제시했고, 중정으로 한옥과 양옥을 만나게 했으며, 양옥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한다’.
골격만 겨우 유지한 채 여기저기 잘리고 다시 덧붙여져 북촌로변에 남아 있던 한옥, 그리고 한옥 뒤에 물러나 우뚝 솟아 있는 양옥. 저자는 두 집을 돌아보며 지금 모습으로 변화해 온 과정을 이야기한다. 건축가의 손길이 닿기 이전의 상태부터 두 집이 어떻게 소통하게 되었는지, 새롭게 변모한 두 집이 북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조경가 정영선이 적재적소에 심어 놓은 나무와 꽃 이야기와 ‘전통을 현대화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건축주의 이야기까지 담았다.
<가회동 두 집, 북촌의 100년을 말하다>는 북촌에 잘 지어 놓은 두 집과 북촌이라는 장소의 이야기는 단순히 바라보는 물리적 대상에 대한 것을 넘어,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그곳에 형성되고 보존되어 온 미학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난 시간의 것으로 그저 담아두거나 새로운 무언가로 지우는 것이 아닌, 지금 시대의 것으로 만드는 방식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