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현대자동차그룹의 새 보금자리를 포함한 대규모 글로벌 비즈니스센터가 들어선다. 전 한전 본사 부지로, 대지면적 7만9,342m2의 거대한 땅이다. ‘글로벌 비즈니스센터 프로젝트’라 불리는 이번 프로젝트는 ‘어디서나 혁신이 일어나고,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선사하며, 24시간 살아있는 시간이 흐른다’를 개발의 원칙으로 삼는다.
단지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신사옥을 비롯해 호텔, 업무시설, 컨벤션, 전시관, 상업시설 등으로 채워진다. 코엑스부터 탄천, 잠실운동장, 한강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MICE 건물인 셈이다. 이는 기업회의, 업무관광, 컨벤션, 전시, 네 분야를 통틀어 이르는 서비스 산업 건물을 일컫는 말로, 1979년부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코엑스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따라서 새롭게 들어설 글로벌 비즈니스센터 Global Business Center, 이하 GBC 를 코엑스와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가 하나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 일대에 새로운 활기를 더해 국제적인 소통의 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와 기대의 목소리도 들린다.
국내외 건축사무소를 대상으로 국제공모를 진행한 결과, 두 개 안이 선정됐다. 당선팀은 미국의 SOM과 NBBJ다. 105층짜리 신사옥 설계는 SOM이 맡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초고층 건물을 설계한 건축사무소로 알려진 SOM은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와 우리나라의 63빌딩 등을 설계한 바 있다. 이번 신사옥 역시 553m의 초고층 건물이다. 하늘을 향해 뻗은 수직 타워의 외관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직선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비대칭 엑스 브레이스 덕에 뒤틀림 걱정도 없다. 최상부 2개 층에는 전망대가 설치된다.
이는 현대차그룹의 임직원뿐 아니라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조성되어 삼성동 주변 일대를 포함한 서울시 전경과 하늘을 한눈에 담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한편, 호텔, 업무시설, 컨벤션, 전시장, 공연장, 상업시설 설계는 NBBJ가 담당한다. NBBJ는 건축, 조경, 인테리어, 도시디자인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건축사무소다. NHN 벤처타워, 상암 IT 센터 등 국내 다수의 건물을 협업설계한 경험도 있다. 호텔과 오피스가 통합된 40층짜리 건물에는 6성급 호텔과 프라임급 업무시설이 배치된다. 공연장은 약 1,800석 규모의 대극장과 클래식 전용인 약 600석 규모의 챔버홀로 구성된다. 이중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MICE 산업의 중심이 될 전시· 컨벤션 건물이다. 이제껏 마땅한 공간이 없어 해외에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현대자동차 관련 전시를 국내에서도 개최할 수 있게 됐다. 연간 11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관련 행사들은 국내에 자그마치 1조 5천억 원 이상의 자금을 끌어들일 것으로 예측된다. 지역의 장소성과 상징성에 걸맞은 아트 앤 컬쳐 비즈니스 관련 전시를 적극적으로 유치할 뿐만 아니라, 서울 시민을 위한 체험형 전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각기 다른 용도의 건물을 하나로 아우르는 디자인 개념은 바로 ‘개방성’이다. 건물 배치는 한국 옛 전통 도시의 골목, 그 사이의 마당에서 영감을 얻었다. 건물 사이에 길과 마당을 만들어 서로 소통하도록 했다. 또한, 완성된 건물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틈을 두어 시민이 접근하기 편리하도록 배려했다. 중앙에는 공공 보행로를 두어 자연스레 도시 광장이 되도록 했다. 봉은사부터 이어지는 보행로는 코엑스, 복합환승센터, GBC를 지나 탄천 수변 문화공간을 건너고 잠실종합운동장, 한강까지 이어진다. 이로써 걸을 수 있는 도시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 강남권과 강동권을 이어주는 보행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지상 2층은 옥외 데크로 연결된다. 옥외 데크는 보행로와는 또 다른 위치에서 연결되어 색다른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전체면적 92만 8,887m2 중 35% 이상은 생태면적으로 계획했다. 지속 가능한 건물의 기반이 될 국제 친환경 건물 인증제도 LEED에서는 골드 이상의 기준을 확보한 바 있다.
전체 설계 조직을 총괄하는 설계 책임은 건축가 김종성이 맡았다. 한국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인 김종성은,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에서 건축학 학사와 석사를 수료하고,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근대 건축의 거장 중 하나인 미스 반 데어 로에에게 사사했다. 호텔, 박물관, 교육 및 연구시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설계작업을 이어왔지만, 특히 다수의 오피스 빌딩을 설계하면서 합리적 구조와 최적의 비례를 끊임없이 실험하고 적용해 한국형 오피스 빌딩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종성은 일찍이 선정된 두 건축사무소가 하나의 디자인 언어로 건물을 디자인하는 데 지침이 되어줄 마스터플랜을 담당한다. 그의 오랜 경험과 연륜이 다수의 국내외 시설별 전문 건축 및 설계 업체를 이끌어 하나의 목표로 나아가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시민들이 GBC를 볼 때,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 같은 익숙함을 느끼게 하고 싶다. GBC가 외인부대를 불러서 뚝딱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수성을 담아낸, 그래서 시간을 이겨내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서울시와 한 대기업의 합작이다. 애초에 현대자동차그룹은 흩어진 52개의 계열사를 통제하기 위한 중앙업무시설이 필요했고, 이는 서울시가 제시한 도시기본계획 ‘2030서울플랜’의 목적에도 부합했다. 2014년 시작된 2030서울플랜은 서울시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도시계획으로, 서울의 미래상과 발전방향을 제시한다. 서울의 정체성 회복·강화, 지역별 특성화된 균형발전, 시민 생활환경의 획기적개선 그리고 대도시권 글로벌경쟁력 강화가 주된 내용이다.
현대차는 부지 매입 시 공시지가를 훌쩍 넘는 10조 5,500억 원이라는 상상 이상의 금액을 제시해 언론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관심의 크기만큼 시작부터 논란도 많았다. 시 규모 설계사업의 당선작 선정 과정에 대한 투명성, 앞으로 폭등할 땅값 등이 대표적인 예다.
작년 10월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국제 공모를 시작으로 서울시는 국제적인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초석을 닦고 있다. GBC 역시 그 중심에 있는 핵심 사업으로 2017년 착공, 2021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수많은 논란을 뒤로하고 시작된 긴 여정. 논란을 잠재우고 국제적인 교류의 장이자 글로벌 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글 / 조현아 기자, C3Korea #160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