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례없을 만큼 빠른 경제 발전을 이뤄낸 대한민국. 그리고 그 변화의 물결 속에서 세계적인 광역 대도시로 성장하며 개발도상국의 롤모델로 자리매김한 서울. 혹자는 효율지상주의가 만들어 낸 이 도시를 삭막하기 이를 데 없다고 말하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뿐, 빽빽한 빌딩 숲속에도 우리 삶에 즐거움을 더해줄 매력적인 공간들은 존재한다. ‘서울은 건축’은 그런 숨은 공간을 탐색하는 한 건축가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
저자 신효근은 지난 5년 간 특색 있고 정감 있는 500여 곳의 공간을 다니며, 서울 곳곳의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건축가이자 공간 큐레이터이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찾은 사례들 중 엄선한 41개의 공간들이 소개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41개의 공간이 모두 공공건축물이라는 것. 이에 대해 저자는 “자리한 땅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건축물, 즉, 땅과 사람과 자연이 연결된 공간이 바로 좋은 경험을 주는 공간”이라며, 누구에게나 열린 공공건축물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이유를 밝히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공간 탐색에 나선다.
책은 크게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사용자-공간-계절 간의 관계성에 주목해, 계절과 어울리는 키워드로 각 공간을 분류한 것이. 예를 들어, 봄은 한 해의 시작을 의미하며 ‘시작’, ‘치유’, ‘아름다움’ 등으로 세분화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건축의 생성과 자연의 생장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며, 자연과 건축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제시한다.
또한, 그는 건축물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시간의 흔적에 집중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공간의 변모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건축은 생명체와 달리 성장하지 않기에,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끊긴 공간이 퇴화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저자는 시간의 흐름을 인정하고 삶을 담아내는 건축은, 지역민의 구심점이 되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에 소개된 ‘송정동의 1유로 프로젝트-코끼리 빌라’는 낡은 건물을 재활용해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한 사례로, 젠트리피케이션에서 벗어나 지역의 모두가 상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오래된 건축물에 의미를 부여해 지역사회의 중심으로 만드는 노력은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만든 도서관으로, 문화 활동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 지역 사회 활성화에 기여했다. 또한, 버려진 석유탱크를 재활용해 만든 ‘문화비축기지’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상징적인 장소로, 공간 재생의 또 다른 훌륭한 사례다. 이들 모두는 지역민의 삶과 역사를 담아내어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장이 쇠락하면서 부속 건물은 흉물이 됐지만, 그것을 흉물이라고 보는 인식은 이방인의 시선일 뿐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었던 소중한 공간이었다” – ‘중림창고’ 중에서
평범한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결국 기억과 추억이다. 끊임없이 재개발과 재건축이 이루어지는 서울에서, 자본이 중심이 아닌, 삶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건물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사람과 소통하고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한 건축, 삶의 흔적이 깃든 공간, 그리하여 우리 곁에 오래도록 남을 진정한 건축물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