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효진 차장, 여승윤 기자
한강 수면과 가장 가까운 다리, 한강 다리 중 가장 짧은 다리인 잠수교가 보행 전용 다리로 탈바꿈한다. 그 첫걸음이 될 ‘잠수교 전면 보행화 기획 디자인 공모’의 결과가 발표됐다. 최종 접수된 99점의 작품 중 건축, 구조, 디자인, 운영, 분야별 전문가 심사를 통해 닝쥬 왕Ningzhu Wang, 네덜란드, 박종대내러티브스튜디오, 박혜주Desire spcae, 영국, 크리스토프 보글Christoph Vogl, 홍콩, 양성구에테르쉽, 5팀이 최종 당선팀으로 선정됐다.
1976년 건설된 잠수교는 용산과 반포를 연결하는 교량으로, 한강에 있는 28개 교량 중 가장 특색 있는 다리다.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탓에 처음부터 낮은 높이로 설계됐는데, 이 때문에 홍수가 발생하면 교량이 잠기고 교통 통제가 빈번했던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82년 잠수교 상부에 반포대교가 추가로 건설됐고, 지금과 같은 복층구조가 완성됐다.
반포대교로 인해 차량 흐름의 안정성이 확보됨에 따라, 잠수교는 4차선의 자동차 도로의 절반을 사람에게 내주었다. 보행로와 자전거도로를 설치하여 잠수교를 걸어서도 건너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고수부지에서 바로 진출입이 가능하고 교량의 전체 길이도 795m로 짧은 편이라, 이러한 변화는 시민들에게도 긍정정인 반응을 얻었다.
이에 서울시 또한 잠수교를 보행 중심의 시민 여가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왔다. 타당성 조사와 경제성 분석 등을 통해 사업의 현실성을 검토해 왔고, 작년부터는 봄과 가을 일정 기간, 일요일마다 차량을 통제하고 각종 버스킹 공연과 플리마켓 등이 열리는 ‘뚜벅뚜벅 축제’를 개최하며 잠수교 보행화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잠수교 전면 보행화가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의 선도사업으로 지정된 것을 계기 삼아, 지난 7월 기획 디자인 공모를 개최하며 본격적인 사업의 첫발을 떼게 됐다.
주목할 점은 기존의 공공프로젝트가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기본 설계공모를 진행하는 데 반해, 디자인 공모와 시민의견 청취 과정을 거친 뒤 이를 반영해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선 디자인 후 사업계획’ 방식을 적용한 것. 즉, 1차 기획 디자인 공모를 통해 우수한 안들을 선정한 뒤, 이 안들을 토대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2차 기본설계 공모를 개최하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업 추진 방식에서부터 혁신적인 디자인과 아이디어를 적극 지원하고자 한 이번 공모에는, 총 473팀이 참가 등록을 하여, 국내 53팀, 국외 46팀, 총 99팀이 최종 작품을 제출하며 국내외 건축인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본심사는 9월 12일 진행됐으며, 박흥균서울건축 심사위원장을 비롯한 심사진(한은주소프트아키텍처랩, 이정훈조호건축, 김남희서울대학교, 최경란국민대학교, 김선영홍익대학교)은 4차에 걸친 투표와 토론, 의견 수렴을 통해 최종적으로 5개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닝쥬 왕의 ‘The Longest Gallery’는 인간적인 스케일, 보행 친화적인 공간, 그리고 주변으로 스며들기에 충분한 공공 공간을 갖춘, 갤러리 겸 극장이다. 잠수교 위에 선형 갤러리를 조성하여 사람들이 한강을 찾아올 새로운 목적을 부여했으며, 동시에 이러한 선형적인 공간을 적절하게 분할해 중간중간 공중 데크를 형성함으로써 긴 공간을 인간적인 규모로 느끼고, 한강을 독특한 뷰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 안이다.
박종대의 ’60 Minute Line’은 잠수교 위에 길고 구불구불한 다리를 추가하여, 한강을 가로지르는 가장 짧은 다리를 가장 긴 다리로 변화 시킨다는 개념의 안이다. 이를 위해 사람들의 다양한 행위를 유도하는 18개 타입의 공간과 프로그램들을 제안하였으며, 이는 시민들이 한강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고 다각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로 인해 현재는 차를 타고 1분 만에 지나가는 잠수교는 60분동안 걸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박혜주의 ‘넘실루’는 잠수교 고유의 아치 형태를 이용하여 물에 떠 있는 누각 형태의 공간을 제안한 작품이다. ‘루’ 형태의 공간이 제공하는 여러 층과 단으로 인해, 시민들은 반포대교의 구조 안에 갇힌 기존 잠수교의 한계를 벗어나 보다 입체적으로 한강을 경험할 수 있다. 잠수교에서 진화된 ‘넘실루’는 기존 잠수교와 반포대교의 안과 밖, 위와 아래를 지나며 시민들에게 진정한 쉼의 공간을 제공한다.
크리스토프 보글의 ‘Jamsu Flower Bridge’는 시작과 끝, 두 지점의 효율적인 연결이 목적이었던 ‘다리’에 즐길 거리를 삽입하여, 사람을 위한 ‘길’로 재탄생시킨 안이다. 자연친화적 방식으로 잠수교에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반포대교 아래에 매달린 정원을 조성한다. 정원의 컬러 팔레트는 계절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하며 잠수교에 자연적이면서도 생태적인 지붕을 선사한다. 이 외에도 기존 기둥의 안쪽 영역은 빛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조성해 걷기의 즐거움을 일깨웠으며, 기존 기둥의 바깥쪽 영역은 계단식 공공공간으로 만들어 누구나 자유롭게 한강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양성구는 서울 시민에게 열 가지 보답을 제공하는 새로운 잠수교를 제안했다. 가드레일을 제거하여 한강으로의 막힘 없는 풍경을 선사하고, 새로 형성된 계단식 공원과 슬로프 영역에 추가된 76개의 기단들로 대청마루와 같은 공간을 조성하여, 한강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즐기고 소통할 수 있게 한다. 또, 반포대교 하부에 추가된 천정은 아래의 풍경을 반사하여 공간을 더욱 확장시키는 효과를 지니며, 그 안에 삽입된 LED 조명을 통해 다양한 미디어 디스플레이를 연출하여 잠수교만의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다.
심사진은 선정작들에 대해 “기획 디자인 공모의 특성상 설계공모 추진 시 잠수교를 서울 한강의 창의적이고 사랑받는 보행교로 발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선정했으며, 각각의 안은 서로 중복되지 않고 각자 발전가능한 여지를 분명히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심사평을 전했다.
이번 공모를 통해 당선작이 선정됨에 따라, 시는 이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내년 상반기 중으로 지명 설계공모를 실시할 예정이다. 2026년, 한강 최초의 보행교로 재 탄생할 잠수교의 변화를 기대한다. 자료제공 / 서울시
The Longest Gallery _ 닝쥬 왕Ningzhu Wang, Arch Mist, 네덜란드
60 Minute Line _ 박종대내러티브스튜디오
넘실루(樓) _ 박혜주Desire space, 영국
Jamsu Flower Bridge _ 크리스토프 보글Christoph Vogl, CHEUNGVOGL, 홍콩
한 다리 건너는 이야기_양성구에테르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