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얼시티
건축가 故 이종호는 건축의 도시적 역할을 고민하며 삶의 리얼리티를 찾아 나섰다. 도시의 겉모습이 아니라 잠재력에 집중하고 그 속에서 건축의 한계와 과제를 강조했다. 또한, 기성 건축인보다 새로운 세대의 건축인에게 관심을 주었고, 오늘의 모습보다는 내일의 변화를 기대했다. 이종호의 건축을 향한 질문에서 출발해 작년 여름, 한국의 도시 현실에 남겨진 ‘리얼리티’를 되짚어보는 전시가 열렸다.
이 책은 전시 ‘리얼-리얼시티’의 도록 겸 후속 출간물이다. 전시는 이종호의 개인 건축전으로 처음 기획되었으나, 도시의 중재자로서 이종호를 바라보고자 많은 예술가가 참여하게 되었다. 건축의 과제를 도시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이들의 활동을 모으고, 한국의 도시 현실에 접근했다. 나아가 이종호가 남긴 질문을 현시대의 건축 및 문화예술의 지평에서 논의했다.
책은 건축가 우의정건축사사무소 METAA 대표과 전시 기획자의 글, 1996년 서울건축학교SA의 <건축가 세미나>에서 진행된 이종호의 특강을 정리한 글로 시작한다. 이어, 아르코미술관 외부에 설치되어 전시의 시작을 알렸던 ‘마로니에 파빌리온’, 이종호와 함께 도시 속 소필지 주거지를 탐구한 김성우의 작업, 평창의 폐교를 리모델링한 감자꽃스튜디오의 작품, 미술관 천장의 철골 트러스을 이용한 건축가 김광수의 작품, 김재경의 도시 기록 사진 작업, 서울의 외곽과 그린벨트를 집단 리서치한 리얼시티 프로젝트 등 18명의 작업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는 신진 작가들이 도시를 주목하는 방식이나 세운상가, 을지로, 청계천 같이 특유의 과거를 가진 공간을 새로운 세대가 경험하는 과정 등을 다룬 강연, 대담, 워크숍의 논의를 정리하며 마무리한다.
놓치고 지나가는 리얼리티를 붙잡기 위해 ‘리얼-리얼리티(Real-Reality)’라는 강조어를 사용하려 했더니 이미 누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의 리얼리티를 만들어내고 있다. 확실히 우리 모두는 우리의 기대와 의지로 덧칠해진, 서로 다른 리얼리티를 바라보고 있다(피터 러셀)’ 만일 우리가 그와 같이 리얼리티를 말하되 ‘진짜’ 리얼리티를 말하지 않고 있다면, 사태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
– 이종호, “리얼리티”, 확실치 않은 언어들 1, C3KOREA, 2005년 1월호.
이종호는 도시 현실에서의 괴리감와 부유감 속에서 단단하게 땅을 딛고 설 방법으로의 건축을 고민했다. 도시와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건축이 어떤 실천을 해야하는지 그와 함께 생각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