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빌딩 리모델링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 (주)건축사사무소 원오원아키텍스 | JUNGLIM Architecture + ONE O ONE architects
삼일빌딩은 동서방향으로 뻗은 청계천로와 남북방향으로 뻗은 삼일대로의 교차점에 자리한다.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초의 마천루로, 이 시대에 와서야 ‘겨우 31층’이겠지만, 63빌딩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또한, 1970년 완공된 이래 쭉 이 땅을 지켜왔으니, 가히 관철동의 터줏대감이자 지난 반세기 종로의 변화를 지켜봐 온 목격자라 할 만하다. 현재 빌딩 앞으로는 청계천이 흐르고 있으나 건물이 지어질 당시만 해도 근대 산업화의 상징과도 같은 고가도로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청계고가, 세운상가와 더불어 종로구를 대표하는 명물로 꼽힐 정도였으니 삼일빌딩이 지닌 상징적 의미와 가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근대화의 상징, 우리나라 고층 빌딩의 출발점, 근대 건축 설계의 자산, 우리나라가 낳은 거장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 각종 교과서와 달력의 건축 모델 등 상전벽해의 세월을 지나온 만큼 수많은 이야기를 담은 채로, 서울이라는 도시에 강력한 에너지를 발하고 있었다.
이처럼 존재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 삼일빌딩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가 필요하게 됐다. 리노베이션의 핵심은 오래된 아름다움을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으로 녹여내되, 이 시대의 오피스가 요구하는 기능은 품을 것. 그리하여 독특한 장소성을 지닌 새로운 건물로 재탄생케 하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기존의 모습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건물 외관은 삼일빌딩의 의미와 가치를 유지하고자 했음을 잘 보여준다. 기존 커튼월의 유리를 현대식 전동 커튼월로 교체하고, 빌딩 뒤에 위치하는 회색 엘리베이터 코어를 건물과 어우러지는 짙은 색의 금속 패널로 바꾸는 등 시대에 맞지 않는 기능이나 지나치게 노후화된 마감재에 관한 것으로 작업을 절제하고 있다. 실내 사무공간의 경우, 백색을 주요 색상으로 선택하고 노출된 기존 천장에 기다란 면발광 조명을 구성하여 부드럽고 환한 분위기를 꾀하고 있다. 덕분에 해 질 무렵이나 밤이면 현대적인 감각의 빛을 발하며 종로의 가로를 장악하는 듯하다.
로비가 훨씬 높고 환해진 느낌이다. 저층부의 슬래브를 철거하고 구조 보강 작업을 거치면서 웅장해졌다는 생각도 든다. 선큰으로 진입이 이루어지는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연계된 덕분이다. 3개 층에 걸쳐 수직적으로 열려 있는 개방감이 공간에 깊이를 더한다. 구름이 피어오르는 듯한 백색의 나선형 계단은 엘리베이터와 별도로 조성된 또 하나의 동선을 그리며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매끈하고 세련되게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 주위로 50년 전 세워진 콘크리트 기둥과 보가 거친 모습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대비되는 두 모습 같지만, 조우하는 두 시대라고 해석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싶다.
로비와 더불어 많이 달라진 표정은 건물 입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청계고가가 철거되고 천변으로 조성된 길이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보행중심가로로 형성됨에 따라, 도시 가로를 대하는 빌딩 저층부의 새로운 대응 전략이 특히 중요하게 요구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한 건물 입구는, 기존에 주차장으로 활용될 때와는 달리 산만하고 누추한 느낌이 사라지고 없다. 달라진 주변 환경에 맞추어 출입구가 건물 옆 삼일로 방향으로 옮겨져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선큰 가든이 생겨 가로와의 소통과 자연광의 유입을 높인 것도 시대성과 도시적 감각을 반영한 것으로 다가온다.
활기차고 새로운 도시의 기운을 덧입으면서도 기존 공간에 적층된 이야기가 지워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점, 오래된 것이 주는 아름다움이 현대적인 감각의 디자인을 만나면서 더욱 농익어진 것, 그것에 안도하고 감사하다.
작품명: 삼일빌딩 리모델링 / 건축설계: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 개념설계: (주)건축사사무소 원오원아키텍스 / 인테리어설계: (주)원오원팩토리 / CM: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85 / 용도: 사무시설 / 구조: 철근콘크리트구조, 철골구조 / 규모: 지하 2층 , 지상 31층 / 대지면적: 1,877.40㎡ / 건축면적: 1,090.58㎡ / 연면적: 35,010.61㎡ / 높이: 110.82m / 건폐율: 58.09% / 용적률: 1704.87% / 내부마감: 테라조타일, OA Floor+카펫타일, 노출천장 위 페인트 / 외부마감: THK28로이복층유리, 스틸커튼월 / 건축주: SK 디앤디, 벤탈그린오크 / 준공: 2020.09 / 사진: 윤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