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의 2024년 전시 의제는 ‘건축’이다. 건축은 생활하는 물리적 공간의 개념을 넘어 인간과 사회의 관계성, 공동체와 지역, 환경에 이르는 다양한 층위를 아우른다. 이런 건축이란 무엇인지 그 존재와 의미를 다각도로 살피는 제시어로, 그런 건축 의제와 관련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는 공공건축으로의 미술관에 내포된 ‘건축의 생애주기’에 주목한 전시 <시공(時空) 시나리오>가 열리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 시기에 서울시립미술관이 개관한 것을 비롯해, 1980년대 후반 이후에는 국가적 행사와 추진 정책에 맞물려 국내 국공립 미술관이 집중 개관했다. 그 사이 미술관들은 이전과 확충을 거쳐 오면서도 반세기 가까운 시간에 따른 공간의 노후화를 논하게 되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역시 서울 전역에 분관을 개관하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서소문본관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다. 건축은 건설부터 노후를 거쳐 폐기에 이르는 유한한 시간성을 지닌다. 생명력 있는 유기체처럼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존재로서, 또 그 흐름이 관련 주체, 관계의 밀도에 따라 다르게 흐르는 존재로서, 건축에 축적된 시간의 지층에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수많은 흔적이 남는다. 이렇듯 단순히 주기의 단계로만 구분할 수 없는 건축의 생애주기가 갖는 특수성에 주목해, 건축에 내재된 시간과 공간을 다차원적으로 다루며 앞으로의 미술관 경험을 모색하는 의미로 시공 시나리오를 작성해 보고자 한다.
전시에는 서도호 미발표 영상작품을 포함해 한국 현대미술의 중추 역할을 해온 구동희, 박기원, 배종헌, 김도균, 김민애와 최근 활발한 활동으로 주목받는 신진작가 이희준, 김예슬, 윤현학, 디자이너 그룹 오디너리피플, 포스트 스탠다드, 12명(팀)의 신작과 함께 설치, 영상, 회화, 사진 작품 20점을 소개한다. 인간의 삶을 기록하는 건축을 주제로 한 ‘건축과 시간’, 공공 미술관과 미술 제도, 사람, 작품의 관계를 돌아보는 ‘미술관의 시간’, 기술이 아닌 사회 공동체 의식의 측면에서 미래의 건축을 그려 보는 ‘상상의 시간’의 세 가지 섹션은 건축가 없는 건축 전시로 구성된다.
‘건축의 시간’에서 서도호(통로: 문래동)는 3채널 영상작품을 통해 금속가공 밀집지인 문래동 골목을 주변 아파트 단지와 병치한 풍경을 기록하고, 경제 이권으로 밀려나는 건축의 시간을 보여 준다. ‘미술관의 시간’에서 구동희(트리플)는 서울시립미술관 본관과 분관 건물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기하학적으로 구획하여 다섯 개의 캐비닛에 재배치함으로써 전체 형태로는 본래 건물을 표상하면서도 블록 단위로 분리해 이동 가능한 미술관을 표현한다. ‘상상의 시간’에서 오디너리피플(불길)은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재료와 그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붉은 조명 장치로 구축한 설치 공간을 선보인다.
7월 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와 더불어 남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건축의 본질적 속성 ‘관계맺기’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하는 전시 <길드는 서로들>이 진행 중이며, 4월 25일부터 시작되는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전은 건축과 우리 삶이 어떤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탐색한다. 전시 관람과 관련한 자세한 정보는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sema.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료제공 / 서울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