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야 알로이시오 Villa Aloysius
1957년 12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신부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를 찾아왔다. 스물일곱의 청년 신부 알로이시오 슈왈츠였다. 어릴 때부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교 사제를 꿈꿨던 그는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한국 부산에 터를 잡고, 소(蘇) 알로이시오라는 이름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파란 눈의 한국 신부는 폐허나 다름없던 이 땅의 아이들에게 유난히 마음 썼다. 전쟁의 상흔 속에 방치된 고아들을 따듯하게 돌보고 가르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았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마리아수녀회와 소년의 집이다.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줄 마리아수녀회를 창설하고, 국제 원조 기관의 기금으로 독립된 교육기관을 갖춘 보육 시설 ‘소년의 집’을 설립한 것이다. 1969년 부산에서 시작된 소년의 집은 75년 서울로, 85년 필리핀으로 진출하였으며, 그 값진 일을 시작했던 알로이시오 신부는 91년 개원한 멕시코 소년의 집 사업을 끝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소임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갔다.
평생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다가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소 알로이시오 신부. 이 책은 세 명의 한국 건축가 우대성, 조성기, 김형종이 알로이시오 신부의 마지막 선교지였던 멕시코 찰시에 지은 한 건물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멕시코 전대통령 부인의 별장으로 지어졌고 한때는 유명 영화배우의 자택이기도 했던 집. 시한부 삶 판정을 받고도 자선사업을 위해 멕시코로 온 알로이시오 신부는 마침 이곳을 떠나고 싶어 했던 집주인으로부터 건물과 인근 땅을 매입했고,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기숙학교를 세웠다. 오랫동안 부자들의 집이었던 건물이 빈자들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개원한 지 20년이 지나는 동안 수십 명이었던 원생은 약 3천 명까지 늘어났으며 그들은 모두 알로이시오 신부가 마련한 이 터에서 자립의 꿈을 키웠다. 이에 마리아수녀회는 알로이시오 신부를 기릴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고, 학교 시설들과는 제법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서서히 노후되고 있던 주택 건물이 그의 고귀한 정신을 되새기는 공간이자 돌봄이 필요한 지역 아이들을 품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책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온 건축가들이 그런 사연을 지닌 건물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감정부터 멕시코의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 사람들의 삶, 잊지 말아야 할 알로이시오 신부의 메세지들 까지, 본격적인 설계를 시작하기에 앞서 가졌던 생각들이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바탕으로, 조금 거칠지만 검박한 집, 풍경과 하나가 된 건물을 만들게 된 과정을 소개한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아치, 하얀 벽, 물홈통, 벽돌, 타일, 천창, 나무, 색상, 조형, 재료, 디테일 등, 새 건물의 모든 것이 기존 건물과 주변 환경을 닮아야 했던 이유를 자연스레 납득하게 된다. 또한, 이 집은 수녀들과 졸업생, 재학생들의 직접적인 참여와, 전 세계 후원자들의 마음이 모여 지어진 집이라는 건축가의 고백에서는 왠지 모를 뭉클함까지 느끼게 된다.
80년이 넘은 낡은 집을 새로운 공간으로 고치는 과정과 결과물을 담고 있지만, 이 책을 건축 작품집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이유다. 실로 건축가들조차도 “이 집은 건축가의 이상과 생각을 실현한 것이 아니라 소 알로이시오 신부의 영성과 마리아수녀회의 쓰임을 위한 것”이라는 말로 작품집이 되기를 정중히 거절한다.
청빈한 알로이시오 신부의 삶을 꼭 닮은 알로이시오의 집, 이 책을 통해 알로이시오 신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완성해 나갈 공동의 정신을 함께 공유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