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글 김소원 과장, 정영진 기자 편집 조희정
1999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와 그의 자회사 포스터 + 파트너스의 주요 프로젝트를 국내에서 첫 선보이는 전시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Future Positive: Norman Foster, Foster + Partners)가 4월 25일부터 7월2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다.
서울시립미술관의 2024년 전시 의제 ‘건축’을 탐구하기 위한 일환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동시대 예술관에 기여한 해외 거장 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수립되고 있는 ESG 정책과 연결 지어 지속 가능성의 비전을 보여 주는 건축가 노먼 포스터를 조명한다.
세계 전역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인 노먼 포스터의 건축물은 고유한 스타일로 귀결되기보다 각각에 맞는 면밀한 탐구 프로세스를 통해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는 그 무수한 데이터를 쌓아 지금에 이른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 + 파트너스의 궤적을 돌아보는 자리로, 무엇보다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는 지속 가능성의 실천을 중심 키워드로 서울시립미술관과 포스터 + 파트너스가 공동으로 연구, 기획해 아시아에서는 최대 규모로 개최된다.
포스터 + 파트너스의 한국 프로젝트 담당 시니어 파트너 마릴루 시콜리Marilu Sicoli는 개막 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과거 대법원에서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공간에 지속 가능성의 건축 프로젝트를 소개한다는 점이 의미 있다며, 함께 전시를 준비한 서울시립미술관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편 포스터는 준비된 영상을 통해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환경과 건물의 중요성, 또 각각이 모여 도시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 등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표했다.
건축을 중심으로 도시, 엔지니어링, 산업, 인테리어, 조경 분야와 다각도의 연구 개발 등 수십여 개의 전문 스튜디오로 특화되어 운영되는 포스터 + 파트너스는 영국박물관 대중정, 홍콩상하이은행, 미국 애플 파크,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과 같은 굵직한 프로젝트를 통해 건물로 정의되는 공간과 공동체 속에서, 그리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재설정하고 일상 풍경을 변화시키는 데 역할해 왔다. 여기서 지금까지 부각된 것은 포스터가 수단으로서 활용한 고도의 공학적 접근과 컴퓨터 기술, 그것을 기반으로 탄생한 하이테크 건축이었다. 철저한 계산으로 디자인한 구조물은 정교함을 넘어 경이로움을 자아내는 미학을 선보이곤 했다.
그러나 그 디자인적 성과에 가려진 본질적인 개념, 그의 모든 건축 프로젝트에서 기본 철학이 된 지속 가능성의 개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는 1970년대 초기 작품에서 이미 환경 친화적 작업을 시도했는데, 미래학자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와 거대한 돔 안에 자연과 사무실을 결합한 ‘기후 사무소’를 구상하고, 스페인 고메라섬에 자연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도시 계획을 수립했다. 환경에서뿐만 아니라 역사를 보존하고 현재와 교차 결합하는 레트로핏retrofit 접근, 기술 실현에 앞선 지역 문화와 기후에 관한 선행 연구, 도시 삶을 다루는 공공 장소의 재생, 인류의 미래를 여는 미래 지향성 등 다방면으로 지속 가능성을 실천했다. 시대의 요구에 편승한 일회성 활동이 아닌, 오래 전부터 행한 건축가로서 사회적 역할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에 정형화한 건축에서 벗어나 포스터식 기술이 집약된 고도의 건축물을 선보일 수 있었다.
‘미래긍정’으로 함축되는 이번 전시는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 + 파트너스가 미래에 관한 연구 결과를 현재에 적용, 선순환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통해 이들이 내일을 기대하고 긍정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시간적, 물리적 변화에도 이들의 건축물이 자생하도록 한 기저에는 동시대 상황의 예리한 분석과 다층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상적인 사유와 철학이 녹아 있다. 이들이 써내려간 변화의 역사는 일관되게 사용자의 필요와 경험을 가치로 둔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포스터 + 파트너스의 작업 공간을 담은 영상과 다양한 구조물을 구현한 건축 모형이 등장한다. 사유와 연구를 시작으로 물리적 건축을 완성하기까지 거친 단계들을 보여 주는 실물 자료들은 작업실을 넘어 실험실에 가까운 풍경을 방불케 한다. 유기적 형태, 섬세한 골조에서 개념적 가치만큼이나 뛰어난 기술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전시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유’, ‘현재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과거’,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기술’, ‘공공을 위한 장소 만들기’, ‘미래건축’ 다섯 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이는 섹션별로 프로젝트를 구분하는 의도로 보는 것보다 지속 가능성이란 무엇인지 살펴보는 다섯 가지 시선으로 해석하기를 권한다. 그렇게 맥락을 확장하며 포스터가 일찍이 주목한 개념, 건축적 실험과 탐구, 미래를 향한 비전을 아우른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유
전 세계 공동의 지향점이 된 지속 가능성은 노먼 포스터에게 있어 오랜 과제였다. 그 흐름을 좇자면 건축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60년대로 거슬러 오른다. 버크민스터 풀러와 구상한 기후 사무소는 투명한 타원형 막 안에 다층의 정원이 미시 기후를 조성하는 업무 공간이다. 스페인 고메라섬의 도시계획에서는 물을 정화하고 재활용하는 순환 고리를 구축한다. 자연이 함께하는 업무 환경, 생태 순환을 돕는 공간은 이후 등장한 지속 가능성의 대책들을 예견한 것과 다름없었다.
현재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과거
노먼 포스터는 이런 말을 남겼다. ‘건축가로서 우리는 본질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미래를 위해, 과거에 대한 인식과 함께 현재를 설계한다.’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알고 싶다면 지난 과거부터 살펴야 한다는 그는 시간의 지층에서 드러낼 것을 찾아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을 재발견하게 한다. 런던 영국박물관에서는 옛 도서관이 있던 평범한 야외 중정이 철골 구조 패턴의 유리 천장이 장식한 아트리움으로 변신했다. 1920년대 아르데코 양식의 건물 천장을 뚫고 솟은 뉴욕의 허스트 타워, 19세기 베를린 국회의사당에 얹은 유리 돔 역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만나 새로운 건축 환경을 만든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러한 개입으로 넓은 맥락에서 공공의 개념을 더해 건축 이상의 ‘장소’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기술
존재를 부각하는 상징적인 외형과 그것을 실현시킨 첨단 기술이 포스터의 건축을 독보적인 반열에 올리곤 하지만, 그 이면에 장소와 환경의 이야기가 담겨 있음으로 그의 건축은 도시 조직에 풍요로운 일상을 심어 주고 있다. 17세기 세인트 폴 대성당을 배경으로 서 있는 영국 런던의 블룸버그 본사는 건물 사이 아케이드로 사람들에게 길을 내주고, 외경 470m 대형 링의 곡면 유리에 싸인 미국 실리콘밸리의 애플 파크는 나무 9,000그루가 자라는 공원과 6km의 산책로를 품었다. 홍콩상하이은행 본사는 전형적인 고층 빌딩과 다르게 수직형 코어 시설의 공식을 깨고 10층 높이의 과감한 아트리움으로 공간을 열었다. 대신 거대 기둥과 트러스가 건물을 지탱하고 62개 에스컬레이터가 층 사이 동선을 연결한다. 시니어 파트너 케이티 해리스는 “동색 판넬을 이용해 공기를 자연 순환시키는 블룸버그 본사와 100%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한 애플 파크는 친환경적일 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장소다”라고 설명했다.
공공을 위한 장소 만들기
건축은 우리 생활과 관계하는 한 사회, 문화, 경제, 환경 등 도시의 여러 과제를 아우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건축 디자인의 사명에 따라 포스터의 작업은 단일 개체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 사람과 도시 삶에 영향을 미친다.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은 천창이 달린 모듈형 모임 지붕과 유리 파사드의 단층 구조로 바깥 풍경과 빛을 들인다. 익숙하게 보아 온 공항의 유형과는 다른 구조와 환경을 제시해 인식을 뒤바꾼 사례로 꼽힌다. 전시장 한가운데 자리한 구조물은 트리 트렁크tree trunk라고 칭하는 기둥으로, 그리드로 배치된 각각의 기둥 모서리에서 네 개 가지가 뻗어 나와 지붕 프레임으로 연결된다. 건축의 개념보다 개방된 영역의 공공 장소 사례로는 보행자 중심 설계로 안전하고 깨끗한 도시 공간을 조성한 런던 트라팔가 광장과 프랑스 마르세유 구 항구 프로젝트가 있다. 두 사례처럼 재생을 목적을 조성된 공공 장소는 도시 활성을 돕는 촉매제로서 만남과 접점의 기회를 만든다.
미래 건축
지구 밖 행성에 집을 짓는다면 어떤 방식, 어떤 모습이 될까. 노먼 포스터가 유럽우주국ESA,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각각 계획한 달 거주지와 화성 거주지는 달의 표면을 덮는 흙먼지인 레골리스로 만든다. 튜브형 돔으로 지지 구조를 세우면, 그 위에 3D 프린터로 레골리스 층을 덮어 단단한 쉘을 만든다. 행성의 물질로 제작하기 때문에 지구에서 자재를 운송할 필요가 없고, 생물 구조와 유사한 막을 형성해 우주비행사가 지내는 데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을 보호한다. 4인 생활의 규모를 가정해 거품처럼 이어진 쉘들은 일반적인 건축 공간처럼 개인 영역과 공공 영역으로 구분된다. 이미 10년 전에 진행되었던 이 프로젝트는 건축가, 재료 과학자, 시스템 분석가, 사회 인류학자, 수학자, 구조 및 환경 공학자가 참여한 다학제적 연구 결과다. 핵심은 미래 지향, 기술 예찬 관점에서만의 시도가 아니라 인류의 삶과 공존을 고민하고 이를 위한 방식을 제안한다는 것.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 + 파트너스의 행보는 오래 전 쏘아올린 로켓처럼 지구 밖에서도 미래의 긍정을 찾아 항해한다.
전시에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이 집약돼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노먼 포스터의 스케치와 메모, 최종 결과물에 이르기까지 도출되었던 여러 단계의 스터디 모델과 예측 데이터는 건물이 자리한 장소와 도시를 다룬 다층적 선행 연구의 흔적들이다. 이렇게 사회적 소명을 담은 총체적인 사고를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여는 노먼 포스터는 미래의 긍정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노먼 포스터는 “서울에 처음 온 게 거의 30년 전인데, 지난해 방문했을 때 새삼스럽게 많은 것이 변했다고 느꼈고, 특히 서울이 품고 있는 문화 생활이 인상 깊었다. 그런 도시,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나와 포스터 + 파트너스의 작업을 소개할 수 있어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최은주 관장은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 + 파트너스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이번 전시에서 이들의 주요 프로젝트를 만나볼 수 있다. 올 한 해 서울시립미술관이 전시 의제 ‘건축’과 기관 의제 ‘연결’을 다각도로 해석하는 여러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으니 많은 기대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전시 기간에는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선행 리서치를 토대로 이야기를 공유하는 릴레이 형식의 프로그램, 건축 관련 전공생 및 지망생과 공공 미술관을 주제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워크숍, 건축용어 해설집 만들기, 어린이 프로그램 등이 순차적으로 열릴 예정이며, 미술관 공용 공간에서 상영되는 1시간 18분 길이의 다큐멘터리(2010)를 통해서는 노먼 포스터가 이야기하는 건축 프로젝트의 배경에 대해 들어볼 수 있다. 자료제공/서울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