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트리 타워
에디터 전효진 차장 글 황혜정 디자인 한정민
자료제공 박호현(한밭대학교) + 스노우에이드 건축사사무소
단조로운 도심 한복판에 날카롭게 파도가 이는 것 같다. 지층부터 상층부까지 환하게 열린 투명한 커튼월이 맑은 물의 이미지로 다가와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 무엇보다 선명한 율동감이 입면에 새겨진 덕분에 모퉁이에 자리하는 투명한 존재감이 도시 속 하나의 기호로서 각인되고 있다.
복잡한 서울 강남대로 이면에 위치하는 신축 오피스 건물이다. 80~9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4층 규모의 벽돌 건물이 있던 자리로, 강남 이면로 특유의 좁고 밀도 높은 환경이다. 그나마 코너에 위치하여 두 면이 좁은 도로로 열려 있어 다행이다 싶다. 협소한 부지와 복잡한 주변 환경이 다소 불편한 조건이지만, 이에 대응하는 건축 전략으로 ‘장소에 대한 기억’에 주목하고 있다. 단일 건축물의 인식조차 쉽지 않은 환경 가운데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수많은 건물과 공간들, 그 가운데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건축물이 장소로서 사람들에게 남겨질 방법에 대해 명확한 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지로서의 건축, 기호로서의 건축이 그것이다.
입면의 지그재그 패턴은 장소로서 건축을 고민한 실질적인 결과물이다. ‘톱니’라는 뜻을 가진 17세기 독일어 ‘차케’가 그 어원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통적으로 ‘지그’는 왼쪽을 ‘재그’는 오른쪽 방향을 가리킨다. 프랑스어로는 갈팡질팡하는 인생이라는 뜻으로 우여곡절을 뜻하기도 하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 모양대로 ‘갈지자’ 패턴이라고도 불린다. 패턴에 담긴 의미대로 반복되는 움직임이나 역동감으로 정적인 입면에 생기를 입힌 것이다.
유리 커튼 월 위에 더해진 선형의 부재들이 단조로운 입면에 리듬을 부여하고 시각적 움직임을 강조한다. 수직의 부재들은 코너 쪽을 향해 좁은 간격에서 점차 넓은 간격으로 이어져 흐른다. 두 면으로 열려 있는 코너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 입면의 밀도를 변화시켜 시선을 집중시키고자 의도한 것이다. 수직 부재들에 더해진 사선 부재들로 인해 긴장감과 반향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마치 그라데이션을 준 것처럼 코너 쪽으로 향하는 선형 부재들의 간격이 점차 넓어져 속도가 늦춰지는 감이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선의 각도가 낮아지고 폭이 넓어지며 시각을 자극하는 강도는 더 커지고 있다. 두 면에서 모여든 지그재그 패턴은 코너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그 지점을 발코니로 개방해서 극적인 효과를 연출한 것도 주목하게 된다. 부재들의 반복되는 패턴과 발코니가 주는 입체감은 도시 가운데 역동성과 활기를 흘려 보내는 기호이자 질서가 되고 있다.
서울 강남과 같이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건축물이 실질적인 활용성보다는 이미지로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들어가 보지 않아도 오며가며 보게 되는 수많은 건축물 중에 일부는 우리의 기억 속에 이미지로 남아 장소의 기억을 생성하는 도구가 되곤 한다. 그 사실에 주목하며 하나의 기호이자 기억 장치로서의 건축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명: 엘트리타워 / 위치: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831-1 / 설계: 한밭대학교 박호현 + 스노우에이드 건축사사무소 김현주 / 설계팀: 김기홍, 권혜지, 윤성웅 / 시공: JKS 건설 / 구조설계: SDM / 전기, 기계설계: 태영 EMC / 건축주: 주.EUKOR / 용도: 오피스, 근린생활시설 / 대지면적: 336.50m² / 건축면적: 161.89m² / 연면적: 1997.92m² / 건폐율: 48.11% / 용적률: 473% / 규모: 지하 2층, 지상 11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 / 외부마감: 커튼월, 알루미늄 루버 / 내부마감: 마천석, 도장 / 설계기간: 2019.12~2021.3 / 시공기간: 2021.6~2023.3 / 완공: 2023.3 / 사진: 김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