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흐르는 집
에디터 전효진 차장 글 황혜정 편집 김예진
자료제공 아키텍츠601
땅에서 솟아오른 동시에 자연에 감싸여 안긴, 모호한 경계에 서 있다. 4m 높이로 차이 나는 대지에 순응하면서 자연스럽게 공간의 위계를 갖춘 형상이다. 정육면체와 유선형의 곡선이 교차하는 기하학적 형태미가 건축주의 도예 작품에 담긴 ‘컷 앤 폴드cut & fold’ 개념과도 닮아 있다. 변주곡 같은 리듬과 운율이 전해지는 형태가 고운 모래색의 페인트 복합 외장재와 어우러져 자연스러움이 더욱 강조된다.
도예가이자 디자이너 부부가 지내는 공간으로, 쇼룸을 포함한 스튜디오와 주거 공간이 공존한다. 지하 1층에 자리하는 스튜디오 & 쇼룸으로의 진입로는 흙과 돌과 나무의 감촉을 눈으로 느낄 수 있는 전이적 공간이다. 대나무 잎사귀들이 위에서 떨어지는 빛을 산란시키며 고요하게 소리를 내는 듯하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빛을 통해, 또 음영의 움직임을 통해 외부와 호흡하고 시간성을 경험한다. 특히, 옹벽을 따라 가늘고 길게 난 틈은 떠 있는 계단의 조형성과 더불어 비워진 풍경이 되어 사유를 안긴다. 오후가 되면 서향 빛이 깊숙이 스며들어 한낮과는 또 다른 따뜻한 질감이 연출되기도 하며, 스튜디오 안 목가구의 검박함이 그늘진 풍경과 어우러지며 한국적인 단아한 미감이 감돌기도 한다.
부부와 부모님의 주거 공간이 계획되어 있는 지상 1~2층은 차경을 통해 내외부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주변에 펼쳐져 있는 자연 풍경을 집의 소유인 양 안으로 고스란히 빌려 들인 것이다. 창과 문을 여닫으며 사계의 변화를 누리던 전통 가옥의 차경 기법을 통해 소담한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덕분에 햇빛과 풍경의 빛깔은 이미 집의 일부가 되어 날마다 호흡하고 교감하는 대상이다.
1층에 자리하는 중정은 작은 영역에 불과하지만, 외부 풍경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차경이 되어 거실, 침실 등과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는다. 내부의 각 실과 실은 물론 안과 밖을 연결하는 매개 공간으로서, 빛과 바람과 나무와 새소리가 드나드는 관계의 중심이다. 해 질 녘이면 안방 한지 창에서 은은하게 번져 나오는 조명이 정원의 밤을 따스하게 채우기도 하는, 어느 장소보다 사색과 자연과의 교감이 넘치는 친밀한 내부 풍경이다.
지하층과 1, 2층 공간의 경계와 위계는 좁고 긴 통로의 독립된 계단실을 따라 분리되는 동시에 연결되어 흐른다. 지하층에서의 계단은 침묵의 공간이다. 깊은 동굴을 연상시키는 지하 스튜디오의 계단과 달리, 지상층의 계단은 빛의 생동감으로 채워져 있다. 7m 높이에 난 좁고 긴 천창을 통해 빛줄기가 쏟아지는 영역으로, 차분한 조도의 계단 공간 안에 정서적 및 시각적 환기가 이루어진다. 이곳에서도 역시 여러 변주의 외부 빛이 내부 공간의 표정을 다채롭게 기획한다.
계단, 통로, 복도 등 동선의 흐름을 주도하는 영역들은 드러나는 구조가 아니다. 은밀하고 내재적인 분위기의 산책길과 같은 개념으로 회유식 공간의 흐름을 보여 주며, 사적 공간과 공용공간, 도예 작업실의 독립성과 연속성을 모두 돕는다.
작품명: 풍경이 흐르는 집 / 위치: 경기도 용인시 고기동 347-65 / 설계: 아키텍츠601 / 설계팀: 심근영, 김선제 / 구조설계: 주.SDM구조기술사사무소 / 전기, 기계설계: 주.덕수이앤지 / 건축주: 스튜디오 보미제호 / 용도: 주거 / 대지면적: 375m² / 건축면적: 74.91m² / 연면적: 282.75m² (지하_132.93m²; 1층_74.91m²; 2층_74.91m²) / 건폐율: 19.98% / 용적률: 39.95% / 규모: 지하 1층, 지상 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구조 / 외부마감: 스타코 아쿠아솔, 징크판넬, 외단열시스템 / 내부마감: 온돌마루, 석고보드 위 친환경 도장, 수입타일 / 완공: 2020 / 사진: 박영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