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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그림에, 시인은 시에 생각을 담듯 건축가는 건축물에 생각을 담는다. 건축물은 대부분 사진과 도면 등의 시각 자료로 대중에게 다가간다. 이들은 건축이라는 거대한 물성을 지닌 결과물에 대해 나름의 생각과 경험을 토대로 해석을 시도하지만, 이미지만으로는 미처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이 남는다. ‘건축가의 생각’은 그렇게 보는 이의 머릿속 한 켠에 남아 있을 의문에 대한 답을 건축가의 글로 직접 알려주는 건축작품집 시리즈 콘셉트의 자전적 에세이다.
건축가는 어떤 경험을 겪었고, 그 경험을 어떻게 작업에 응용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해줄 ‘건축가의 생각’ 시리즈 첫 번째 저자는 한국 대표 중견 건축가 김영준이다. 저자는 ‘집합 형태의 갈래’라는 큰 주제 아래 10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총 30가지 건축 작업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집합 형태는 도시건축을 전제로 하여 다양한 변주를 모색하기 위한, 김영준의 건축 지향점이다. 그의 건축 철학은 ‘건축 유형, 매트 빌딩, 건축가 없는 건축, 비개인적 건축, 포메이션, 플롯, 흐름의 선, 밴드, 필드 블록, 다중의 질서’로 나뉘며, 각 키워드마다 계획안과 현상설계 출품작을 포함한 저자의 건축작품들을 세 개씩 엮어 소개한다. 김영준이 직접 전하는 작업 비하인드와 더불어 작품 의도를 짚어 주는 다이어그램 이미지와 도면의 시각 자료를 훑으면서 저자가 지나온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와 함께 건축 개념을 축적해 가는 듯하다.
김영준은 직육면체 덩어리를 조합하고 분절하고 쌓고 짜고 엮어 재구성한다. 책은 이러한 결과물을 도출하기까지 저자가 어떤 생각으로 작업을 풀어 가는지 보여 준다. 김영준의 학창 시절, 유학 시절, 설계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경험한 일상은 모두 지금의 저자를 만든 바탕이다. 저자는 책, 영화, 여행, 축구, 전시, 친구 등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상 요소와 연계해 개인적인 경험과 학술적인 이야기를 함께 전한다.
“미스의 차가운 이성보다는 르코르뷔지에의 정열적인 이상에 더욱 호의를 느꼈다. 막 개발이 시작된 우리의 상황에서 산업화를 전제로 하는 미스보다는 르코르뷔지에의 작업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의 도시 프로젝트나 남미 프로젝트 등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 르코르뷔지에의 유산으로 둘러싸인 주변의 인적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졸업논문 주제로 르코르뷔지에를 선택했다.”
해외에 거주하면서 직접 익힌 도시 이야기, 지금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선배 건축가들의 이야기, 친구들과 함께했던 건축 이야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건축가 김영준에게 축적된 시간과 건축 개념을 살펴보자.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당시 저자가 느낀 감정도 엿볼 수 있다. 지금의 저자를 있게 한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그러모아, 마침내 거대한 물성을 지닌 건축 작품을 이해하게 하는 책이다.
김영준은 서울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성장기 이후 안정기에 접어든 시기 건축과 도시 중간 영역에 관심을 두고 와이오투도시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학교, EUM(스페인), MIT(미국) 등에서 강의했으며, 파주출판도시 건축 코디네이터, 서울시 2대 총괄건축가였다. 집합 형태를 주제로 자하재(뉴욕 MOMA 소장), 행정복합도시 현상설계(공동1등), 논현동 ZWKM 사옥 등의 작업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