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23-01-09
도시의 만화경
도시그림, 현실과 동경을 넘나들다
피렌체, 파리, 로마, 런던, 빈, 베이징, 교토, 뉴욕… 이름만으로도 여행의 욕구를 자극하는 매력적인 도시들이다.
모방할 수 없는 장소의 혼으로 가득 찬 이 도시들의 매력을 남기고 싶은 건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지, 지금의 우리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듯, 과거의 화가들은 앞다투어 도시를 그렸다. 그리고 그렇게 그려진 한 장의 도시그림 속에는 수백 페이지의 글보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계사에 빛나는 동서양의 열다섯 도시 이야기를, 그림을 통해 풀어내 보는 책 ‘도시의 만화경’이 출간됐다. 도시를 그린 한 장의 그림을 펼쳐 놓고, 그림에 묘사된 도시와 건축은 물론, 미술사, 지리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기대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전례 없는 책이다.
저자는 먼저 도시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책 머리를 연다. 그에 의하면 서양에서는 도시그림을 주로 지도와 결합한 형식으로 그렸는데, 도시 홍보 목적에서 그려진 이러한 그림에는 도시의 역사와 정시와 시대상뿐만 아니라 ‘꿈과 동경’이라는 귀중한 요소가 담겨 있었다. 시민들은 그림지도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자부심을 느끼고, 혹은 가보지 못한 다른 도시로의 여행을 꿈꿨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지도를 ‘기술과 예술이 결합해서 만들어낸 인류의 빛나는 성취’라고 말하며, 그림 뒤에 숨어 있는 온갖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우선 도시그림을 들여다보며 기본적인 정보들을 훑어 본다. 누가 언제 왜 그린 것인지, 그림의 특징은 무엇이며 역사적 중요성은 어떠한가 등을 말이다.
이 역시 중요한 정보지만, 논의의 몸통은 아니다. 몸통은 도시다. 저자는 도시를 이야기하기 위해 그림의 여기저기를 좀 더 세밀하게 뜯어 본다. 미시적인 눈으로 그림 속의 중요한 장소, 길, 건물, 주택 등 요소 하나하나를 살피고, 거기에 거시적인 시각을 더해 그림이 그려진 시점을 중심으로 도시의 기원과 성장, 변화를 이야기한다.
단순히 쌓여있을 뿐인 알갱이들이 거울의 반사에 의해 환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는 만화경처럼, 단순한 그림 속의 요소들은 인문, 사회, 역사와 함께 해석되면서 풍성한 이야기를 지니게 된다. 이렇게 열다섯 도시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동서양의 도시 문명을 비교론적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다.
동서양 열다섯 도시의 숨은 이야기를 알아가는 즐거움만큼이나 눈의 즐거움도 크다. 쉽게 풀어 쓰고 간결하게 만진 글과 엄선한 450여 장의 그림은 깨달음의 즐거움과 눈의 호사를 동시에 선사한다. 수백 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지만 묘사와 해설이 너무나 생생해 마치 직접 현장에서 보는 것만 같다.
다음 여행은 저자의 깊고 폭넓은 지식과 그림지도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있는 이 책과 함께 떠나보면 어떨까. 과거의 그림지도를 보며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