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828m 높이 부르즈 칼리파다. 그 뒤를 쫓는 건축물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679m 메르데카118 빌딩이며, 국내에서는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가 123층 554m로 최고층을 기록한다. 높이 솟은 장대한 형상은 도심 건축물로서 갖는 상징성이 크며, 첨단 기술로 이룬 성취감은 물론 현대 기술의 한계에 도전하는 위풍당당함을 표현한다. ‘더 높게, 더 높이’를 겨루는 고층 건축물을 향한 인류의 욕망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일본의 공학박사 오사와 아키히코가 집필한 ‘도시건축사: 고층건축물의 세계사’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건축사를 따라 지금껏 존재했던 고층 건축물과 현대 마천루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훑는다. 그리고 인류의 욕망으로 높게 쌓은 고층 건축물로는 어떤 것이 있고, 인류는 왜 그렇게 높이에 집착했는지를 살펴본다. 직립 자세로 진화한 사람은 중력에 속박된 존재임을 강하게 의식한 까닭에 위를 향한 높이로의 동경이 생겨났다며, 인간이 높이에 연연하는 것은 기본 욕구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 책에서는 그 외에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외부 영향들로 권력의 상징, 과시, 경제성, 경쟁 등을 언급하면서 7개의 시점에서 고층 건축물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또한 건축물의 높이가 도시의 가로경관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보며, 건축과 도시 경관의 관계, 현대 도시에서 관찰되는 풍경에 대해 설명한다.
역사 속 고층 건축물의 중심지는 하늘의 신과 지상의 인간을 연결하는 의미로 높이 지었던 신전의 일종인 지구라트를 건설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피라미드를 세운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 중동이었다. 중세 유럽을 거쳐 19세기 말에는 현대 건축의 거장들이 설계한 마천루의 나라 북아메리카로 옮겨 갔다가, 20세기 말 높이를 향한 인간의 꿈이 실현되는 실험장으로 아시아와 중동의 도시들이 주목받으면서 약 5000년을 지나 다시 중동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편, 근대 이전에는 고층 건축물이 권력, 종교, 군사 용도 중심으로 기능했다면, 근대 이후에는 자본의 힘을 얻은 고층 건축물이 지어졌고, 여기에 상업, 주거, 통신, 전망 등 다양한 기능이 탑재되었다. 작가는 이처럼 인류 사회에 귀속된 존재로서 고층 건축물의 공공성에 집중하며 책 말미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특히 고층건축물은 도시 위에 펼쳐지는 하늘을 차지하기 위해서 토지의 기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 고층건축물은 어떻게 공공성을 획득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묻는다. (…) 그 역할과 의의를 다시 물어야 한다. 이 책이 도시경관의 높이나 고층건축물의 의미, 나아가 앞으로의 도시 모습을 생각하는 계기다 된다면 좋겠다.”
고층 건축물의 역사에는 온갖 문명과 문화, 인류의 이야기가 쌓여 있다. 디지털 전환의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초고층, 최첨단, 초대형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현재, 도심 고층 건축물에는 어떤 이야기가 축적되고 있을지. 고층 건축물의 역할과 의미, 이를 배경으로 한 생활 풍경을 떠올리고, 또 그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지 상상하며 앞으로 맞이할 미래 도시의 모습을 그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