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랑
운생동건축사사무소 | Unsangdong Architects Cooperation
콘크리트 패널의 통일된 색감과 물성 때문인가 보다. 도도하면서 도회적이다. 전체적인 선 하나하나가 연한 회색 톤의 세련된 연미복을 차려 입은 듯 깍듯하게 예를 갖춘 인상을 주기도 한다. 선과 재료가 간결하고 차분한 가운데 한 면 전체에 살짝 파동을 일으키고 있는 몸짓, 그 덕분에 자칫 차거나 지루할 수 있는 인상을 상쇄시켜 주고 있다. 아니, 건축의 표정을 오히려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가로 주변으로 생동감과 활기의 파장을 잔잔하게 전달하는 에너지의 원천을 발견하고 싶은 동기를 부여한다.
건물의 스킨이 본체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도 같고, 스킨 밖에 또 하나의 스킨이 자리한 것도 같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스킨이 서로 엇갈린 채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어 입체감은 더욱 강하게 와 닿는다. 건축의 외피에 해당되는 요소인 스킨과 건축의 총체적인 틀인 스케이프의 결합을 의미하는 ‘스킨스케이프’라는 실험적 시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스킨과 구조의 결합, 스킨과 공간의 결합, 스킨과 프로그램의 결합 등 스킨에 관한 여러 조합을 통해 새로운 공간 모델을 찾아가는 작업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과감하고 창의적이다. 갤러리라는 공간의 성향과 프로그램에도 부합되는 태도라 여겨진다.
이곳에서 적용된 스킨스케이프의 개념은 ‘스킨이 공간되기’라 볼 수 있다. 스킨스케이프의 최종 스킨은 전시의 정보를 제공하는 미디어가 되어 외부전시를 이끄는 거대한 캔버스가 된다. 스킨스케이프를 통해 새로이 창출된 내부공간들은 여러 겹의 건축 스킨을 관통해볼 수 있는 특이한 경험을 제공한다. 단순히 공간을 한정 짓는 개념으로서의 스킨이 아니라, 공간과 공간 사이 혹은 스킨과 스킨 사이를 오가며 벽 속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공간 개념을 몸소 발견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 틈의 공간은 내외부 사이에 모호한 경계를 만들어낸다. 그 모습이 공간에 긴장감을 부여하긴 하지만 결코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진중하거나 지루할 수 있는 공간에 재치 한 점이 점잖게 그려진 느낌이다. 이는 건물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과 건물 외부에서 내부를 향한 응시를 동시에 강조하는 방법이기에 그만큼 건축공간을 풍요롭게 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 건축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프랑스 철학가 들뢰즈의 ‘주름’에 관한 개념이 떠오른다. ‘주름진 표피와 매끈한 표피의 연속성 속에 존재하는 창조적 탄생의 구조’. 그것을 발견하고 제안한 흥미진진한 작업이다.
작품명: 예화랑 / 위치: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 사무소명: 운생동건축사사무소 / 디자인팀: 장윤규, 신창훈 / 용도: 다중이용시설 / 대지면적: 567.5㎡ / 용적률: 58.62% / 연면적: 1,995.14㎡ / 규모: 지하2층, 지상7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구조 / 주요마감: T50 베이스 패널, 노출콘크리트, T24 투명이중유리 / 실내주요마감: 에폭시 코팅, 베이스 패널, 노출콘크리트 / 완공연도: 2005 / 사진: 김용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