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베이힐 풀앤빌라
건축은 조금 욕심을 내보기로 작정한 것 같다. 대지를 따라 기다랗게 펼쳐져 있는 파노라마 같은 광경을 하나도 놓치지 않을 기세다. 단 몇 컷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저장해두기에는 주어진 장소의 자연이 너무 광대하지만, 건축은 주눅 들지 않은 모습이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주변의 풍광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각 실마다 각기 다른 감성과 모양새로 담아내려는 모습이 담대하기까지 하다. 같은 곳을 여행한다고 하더라도 벅찬 감동의 순간과 상황에 대한 기억은 개인마다 다른 법, 베이힐 풀빌라에서의 여정은 그 사실을 강하게 경험하게 한다. 주어진 자연은 광대하나, 자신만의 장소성과 그에 대한 기억과 감성을 자기 본위로 편집하고 오래도록 저장하게 하는 힘이 있다.
위치하는 곳은 서귀포 중문 서쪽 하예마을이다. 뒤로는 제주의 오름이 산수화처럼 겹쳐져 있고, 앞으로는 탁 트인 수평선 위에 우뚝 서 있는 해안절벽이 원경으로 펼쳐져 있다. 시선 조금 아래로 돌담의 굽은 선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제주의 집들이 내려다보인다. 대자연의 풍광과 그 안에 앉혀진 섬마을의 작고 정겨운 경치와 정서가 서로 대조적으로 겹쳐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장소가 마치 이상세계와 현실세계의 모호한 경계면에 마련된 무대처럼 다가오자 극적인 공연을 기대하게 된다. 실제로 각각의 건축들은 그 감각을 꼭 부여잡은 채 태어난 공연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콘도형 호텔Condominium Hotel은 전망을 받아들이는 테라스의 접지 방법에 차이를 두고 공간이 블록처럼 조합되어 있다. 각 실과 테라스가 방향과 모양에서 다채로운 태를 발하고 있는데, 이러한 건축방식이 전체 리조트의 인상을 결정 짓고 있다. 스태킹 빌라Stacking Villa는 경사지형에 순응해 공간을 쌓아나가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1개 동마다 2개의 유닛이 결합되어 있으며 최대 3가구 또는 3세대가 1개 동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클리핑 빌라Clipping Villa에서는 옆 집 지붕을 안마당으로 삼아 공유할 수 있으며, 지그재그 빌라Zigzag Villa는 독립형 건물로 길과 능선을 따라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미송 패널의 흔적이 수직으로 새겨진 노출콘크리트와 제주석이 만나 자아내는 물성이 자연스럽다. 세월의 흐름을 타고 함께 생장해나갈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재료의 물성이 주는 정감도 그러하지만, 모든 동마다 같은 물성이 이어지고 엮여 있는 모습, 동선과 공간이 중첩되어 있는 모습, 제주의 풍경이 주는 친밀감 등이 마음 속 경계와 긴장을 무장해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행객들 사이에 동질감을 높이고 여행지에서의 자유로움을 한껏 선사할 것이다.
프로젝트명: 제주, 베이힐 풀앤빌라 /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예동 하예마을 1888 / 설계 : 김동진(홍익대학교), ㈜ 로디자인 도시환경건축연구소 / 설계팀 : 이상학, 이영선, 박해인, 박종범, 정동휘, 주익현, 윤지혜 / 시공 : 대안종합건설(주), (주)제효 / 구조설계 : SDM 구조기술사사무소 / 기계전기설계 : 하나기연 / 용도 : 숙박시설 / 대지면적 : 9989㎡ / 건축면적 : 1978.70㎡ / 연면적 : 4854.02㎡ / 건폐율 : 19.81% / 용적률 : 34.14% / 규모 : 지하2층, 지상4층 / 구조 : 철근콘크리트 / 외부마감 : 미송노출콘크리트, 지정목재마감, 제주석 / 설계기간 : 2012.2~12 / 시공기간 : 2012.12~2013.12 / 사진 : 남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