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플래그십 스토어의 역할이 대거 확장되었다. 패션, 명품과 같은 특정 브랜드가 점유했던 서비스에서 지금은 주류, 화장품, 생활용품, 식품까지 다양한 브랜드가 소비공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즉, 소비문화에 건축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건축가 전유창이 말하고자 하는 건축과 ‘물질’의 관계는, 바로 이 플래그십 스토어의 바다에서 포착되었다. 책, <물질과 상상>은 저자의 관점에 따라 물질문화에서의 건축에 관해 담고 있다.
책은 ‘연금술적 건축에 관한 10개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갖는다. 우선 연금술적 건축이란, 다양한 재료의 실험을 통해 시적 상상력을 찾아가는 건축 과정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책 서문에서는 상상력은 결국 물질이 가진 특성으로부터 발현된다고 전제하며, 물질화된 환경이자 곧 건축에 관해 이렇게 표현한다.
“물질은 건축으로 세계와 소통하고 주변과 이어지며, 그 시대상을 스스로 드러내며 존재한다. 각 시대의 사회와 문화, 기술의 영향에 따라 목적과 의미가 변화하며, 우리 삶의 감각적, 심리적, 정서적 영역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는 환경을 구현한다.”
책은 세 파트로 나뉜다. 각 파트에는 아주대학교 대학원 건축설계스튜디오 학생들과 저자가 함께 탐구한 디자인 실험이 소개된다. 총 10개 프로젝트는 탐구 내용을 엿볼 수 있는 분석 글과 함께 건물 도면, 모형, 다이어그램, 사진 등 관련 이미지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파트 1, ‘지각의 확장, 스펙터클과 실감의 건축’에서는 소비사회의 변화에 따른 공간의 특성에 집중한다.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물질문화를 이루었는지 팬톤Pantone, 라이카Leica,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플래그십 스토어를 들어 결론을 내린다. 각기 색, 형태, 질감을 사용하여 지각을 자극한 건축 사례다.
파트 2, ‘물질로 상상하기 혹은 이야기하기’는 물질의 본질을 이해하고 특성을 변형하여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에 대한 장이다. 아니쉬 카푸어, 서도호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언급하면서 예술가가 물질의 잠재력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확장해 나간 방식을 설명한다. 해당 파트에서는 산펠레그리노Sanpellegrino, 이씨엠ECM, 브롬톤Brompton, 롤렉스Rolex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건축물이 내포한 감각적 상상력을 탐구한다.
파트 3, ‘디지털 기술과 물성 모폴로지’는 전통적인 프로세스를 변화할 수 있게 한 디지털 기술에 관해 얘기한다. 흔히 디지털은 상상력을 저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디지털 기술은 물질의 속성을 변화하게 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물질의 잠재력을 끌어냈다고 말한다. 딥디크Diptyque,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 Secret, 만두카Manduka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상세하게 분석한 내용이 함께 담긴다.
저자는 전작 <건축, 감각의 기술>에서 현대건축의 외피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연구를 제시해 주목받은 바 있다. 이번 책 <물질의 상상>에서도 마찬가지로, 시각문화와 물질문화 사이를 헤엄치며,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는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한 디자인 실험이 소개됐다. 책 속 감각을 자극하는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건축의 실체를 느끼게 된다. 바로 물질로서의 건축이다. 책은 건축을 이야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물질을 마주하게끔 우리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