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힐튼 서울호텔은 1세대 건축가 김종성의 설계로 1983년 서울역 앞, 남산 자락에 세워졌다. 이 호텔을 짓기 위해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미국에 있던 김종성을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 건축사를 대표하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제자 김종성이 표현한 한국 건축의 모더니즘을 힐튼호텔은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서울 중심부의 상징적인 풍경으로 자리 잡은 매스의 크기와 비례, 로비에서 아트리움, 라운지로 이어지는 공간의 연결은 마찬가지 힐튼호텔의 건축사적 가치를 빛내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힐튼호텔의 존재는 40년에 그치고 말았다. 2021년 말 이지스자산운용에 매각된 이후 2022년 12월 31일 영업 종료되었고, 2023년 11월 발표된 힐튼 재개발사업 정비계획안에 따라 일부만 남겨 두고 전면 철거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힐튼호텔의 자리에는 업무, 숙박, 판매 시설이 포함된 142m 규모의 복합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재개발사업이 확정되기까지 힐튼호텔은 존치 여부에 있어 건축계 뜨거운 감자였고, 2023년 4월 12일 문화예술 전문 디지털미디어 컬처램프가 창간 기획으로 특별좌담회를 개최함으로서 본격적으로 논의 자리가 마련된 바 있다. ‘건축가 김종성과의 만남: 힐튼호텔 철거와 보존사이’를 주제로 한 좌담회에서는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함께한 건축유산인 힐튼호텔을 철거하기에 앞서 원 설계자인 김종성과 중견 건축가들이 뜨거운 토론을 펼쳤다. 그 의미 있는 이야기를 건네받아, 힐튼호텔을 기억하고자 하는 건축가, 건축학자, 저널리스트가 모여 <힐튼이 말하다>가 완성됐다. 프롤로그 첫 단락에는 이런 문장이 담겼다.
“한 도시에 존재했던 한 건축물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 그 삶이 어떻게든 지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많은 사람이 함께 마음과 열정과 시간을 모았다.”
책은 이제 곧 사라질 힐튼호텔에 대한 추억 앨범이다. 건축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 건물의 탄생부터 사라지기까지의 시간을 담았으며, 그 존재 가치와 의미, 그리고 보존을 위한 건축계 대안과 노력들이 모여 있다. 역사가 쓰여졌던 시작의 순간, 힐튼과 함께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한 주변 풍경들, 힐튼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연들, 영업 종료를 앞둔 시점의 모습과 종료 이후 텅 빈 공간을 찍은 사진 아카이브를 실었고, 건물의 청사진부터 설계도면까지. 여러 노력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부 흔적만 남게 될 힐튼은 여전히 말한다. 도심 개발논리에 대해, 건축유산 보존에 대해, 그리고 여기에 얽힌 공동체의 기억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