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린헌 照隣軒
이로재김효만건축사사무소 | IROJE KHM Architects
근린생활시설도 아니고 주거건축에 금속 소재의 표피는 왠지 낯설다, 한다면 너무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시선일까! 좀 더 솔직해지자면, 이질적이기도 하고 너무 과감한 표정이기도 하다. 주변에 한옥 주거지가 나지막하게 형성되어 있는 가운데 지하1층 지상5층 규모의 금속 매스라 더욱 그러하다. 한옥 규제가 완화되면서 하나둘 한옥이 사라지거나 다가구주택으로 변모되어 가는 바람 속에 조린헌 역시 한옥을 허물고 태어난 가옥이다. 건축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문화파괴자적 입장으로 가슴 아픈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만큼 기존에 위치하던 한옥을 기념하는 또렷하고도 특별한 장소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 익스펜디드 메탈 속 흐릿하게 보이는 건물은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과거의 공간을 은유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여러 세대가 독립채를 갖고 함께 살아가는 다가구주택이다. 조린헌이 제안하는 바는 여러 세대가 이웃으로 함께 어우러지는 ‘수직구조의 동네’에 관한 개념이다. 한옥이라는 과거의 역사성과 맥을 잇고, 동네라는 개념을 매개하는 공간으로 가장 먼저 챙긴 것이 기존 한옥의 ‘마당’을 회복시킨 작업이었다고 본다. 조린헌의 중정으로 재구성된 마당은 각 세대가 둘러싸며 공유한다. 이곳을 통해 공간은 빛과 바람과 소리를 호흡한다. 이웃과 이웃을 이어주는 길의 역할은 각 채의 단독주거공간을 이어주는 수직적 외부계단이 맡고 있다.
외피로 사용된 익스펜디드 메탈의 반투명성에서 주변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에 대한 조심스러운 태도가 느껴진다. 대신 장소에 특별한 가치와 에너지를 심겠다는 의사 전달의 의미도 분명 읽힌다. 한옥의 고즈넉한 풍경, 남산타워가 올려다 보이는 도시의 전경을 흐릿하게 건물 안으로 유입시키며 주변과 소통하기도 한다. 그 모습이 오래된 필름에서 느껴지는 운치가 있다.
건물 내부의 마감이나 공간 구성 역시 외부만큼이나 이색적이다. 샤워부스, 욕조, 변기, 세면대 등 은폐되기에 마땅한 사생활 프로그램들을 자유롭게 노출한 부분이나 공중에 떠 있는 침실 등은 무엇보다 흥미롭다. 공간의 주체가 행하는 모든 행위가 스스로 볼거리가 되도록 극적으로 유도함으로써 진부한 일상을 벗어난 재미난 경험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공사비를 절약하는 데도 큰 몫을 담당했다. 콘크리트 바닥, 노출콘크리트 벽면, 마감재를 뺀 드라이비트, 조립식 샌드위치패널, 철재 계단 등 소재의 물성을 그대로 노출한 것 역시 경제성을 고려한 작업이다. 나아가 경쾌하고도 멋스러운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작품명: 조린헌 (照 隣 軒) / 위치: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15-152 / 지역.지구: 도시지역, 일반주거지역, 문화재주변지역 / 설계: 이로재김효만건축사사무소 / 설계담당: 정수미, 박미영 / 구조설계: 신영록 / 시공: 김영 / 건축주: 강태진 / 주요용도: 다가구주택, 사무실 / 대지면적: 169.67㎡ / 건축면적: 100.28㎡ / 연면적 447.85㎡ / 건폐율: 59.10% / 용적율: 190.51% / 규모: 지하1층, 지상5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마감: 익스펜디드메탈, 노출콘크리트, 드라이비트 /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석고보드, V.P. / 사진: 건축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