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로헌
이로재김효만건축사사무소 | IROJE KHM Architects
좌우 양측이 대구를 이루는 적삼목 상층부와 그 아래 노출콘크리트 하단부가 단출하고 정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밖으로 드러난 단순하고 차분한 모습으로는 내부의 복잡다단함과 입체적 구성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밖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이 열리는 지점은 대문을 여는 순간부터다. 대문에서 이어져 있는 기다란 진입마당에 들어서면 집이 어째서 ‘지혜로운 길 慧路’을 논하고 있는지 짐작하게 된다.
대문을 들어서는 동시에 걷게 되는 긴 ‘진입마당’은 집안 곳곳에 자리하는 열 개의 마당 중 그 첫 번째다. 이곳에서 ‘계단마당1’을 거쳐 ‘앞마당1’로 나아가게 되고, 다시 곧장 길게 누하樓下로 진입하게 된다. 계단으로 둘러싸인 1층의 ‘안마당’이 자리하는 곳이다. 앞서 말한 ‘앞마당1’에서 누하 방면이 아닌 브리지로 향하면 ‘앞마당2’에 이르고, 이곳은 다시 ‘계단마당2’를 거쳐 2층의 ‘노대마당’으로 이끈다. ‘노대마당’은 ‘계단마당3’을 거쳐 3층 정상부에 자리하는 ‘옥상마당1’으로, 또 그 바로 옆의 하늘을 향해서만 열려 있는 ‘옥상마당2’로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열 개의 마당은 전면 도로와 맞닿은 대문에서 시작하여 4개 층으로 각기 흩어져 자리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길이자 과정으로서 모두 연계되고 연속되며 극적인 소통과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흩어져 존재하는 독립성이 강조된 동시에 관계 맺기를 통해 하나를 이루어가는 공간들, 혜로원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정신이 물리적인 공간으로 구현되다 보니 집은 다분히 입체적이다. 각 마당들이 들고 나는 것은 물론 공중에 떠 있기도 하고 지면을 파고 들기도 한다.
내부 공간 구성에서도 비슷한 질서를 발견하게 된다. 안방은 침실과 서재로, 자녀방은 침실과 공부방으로, 각기 두 개의 프로그램을 갖춘 채 복층으로 각각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두 방은 떠 있는 두 개의 상자처럼 거실과 식당이 연결되는 1층의 공용 매스 위 큰 판에 얹혀 있는 형상이다.
두 침실 아래 자리하는 거실과 식당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양분되어 배치되어 있다. 거실에 음악실의 기능을 더해 놓고 있어서 식당 및 타실들과 분리시킨 것이다. 세 개 층 높이의 천장고를 가진 거실 속으로 떠 있는 안방 외에도 대나무 정원이 녹아 들어와 하늘이 인지된다. 떠 있는 안방과 거실 벽 사이의 톱라이트를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은 거실의 노출콘크리트 벽면을 빛줄기로 씻어 내리며 하루 종일 공간의 입체감과 변화를 꾀한다.
집은 도시와 자연의 경계선에 위치하여 뒤로 자연과 맞닿아 있다. 독립적으로 흩어진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면서 입체적인 짜임새를 갖춘 덕분에 집안 어디에서나 주어진 것보다 더 풍부한 자연 요소를 누리게 된다. 지혜로운 집의 진가가 그리 발휘되고 있다.
작품명: 혜로헌 / 위치: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864-10 / 설계: 이로재김효만건축사사무소 / 설계담당: 정수미 / 용도: 단독주택 / 대지면적: 594㎡ / 건축면적: 168.63㎡ / 연면적: 269.07㎡ / 건폐율: 44.25% / 용적률: 70.60% / 규모: 지상3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마감: 노출콘크리트, 적삼목 /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색락카, 합판 / 준공: 2006 / 사진: 김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