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관련 산업의 지원과 육성 토대 마련해
2014년 6월 5일, 대한민국의 건축법이 제정 된지 50여 년 만에 새로운 건축법이 시행된다.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이하 진흥법)이다. 이에 국무조정실 소속 국책연구기관인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이하 AURI)는 법령 시행을 이틀 앞둔 지난 6월 3일 명동 포스트타워에서, 진흥법과 이로 인해 개편될 공공건축의 설계발주 제도를 공유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논의하는 2014 제2회 AURI 건축도시포럼을 개최했다.
3인(김상문국토교통부 건축정책과, 박인수파크이즈건축사사무소, 염철호AURI 연구위원)의 주제발표에서는 진흥법의 제정 배경과 주요 내용, 진흥법의 역할과 그에 거는 기대, 진흥법에 따른 설계발주제도 개편 내용이 소개되었으며, 이어진 토론 및 질의응답 시간에는 이 법에 영향을 받을 서로 다른 입장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었다.
건축서비스, 건축서비스산업, 그리고 진흥법
건축서비스란 건축물과 공간환경을 조성하는데 요구되는 연구, 조사, 자문, 지도, 기획, 계획, 분석, 개발, 설계, 감리, 안전성 검토, 유지관리, 감정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또한, 건축서비스산업은 이러한 건축서비스를 통해 사회·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을 뜻한다. 즉 진흥법의 제정과 시행은 건축을 ‘건축물’로만 바라보았던 지금까지의 시각에서 벗어나, 건축의 확대된 영역과 그 부가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준비부터 시행까지 걸린 시간은 3년. 2011년, 법 제정을 위한 준비모임을 발족하고 실무 TF팀을 구성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가닥을 잡은 법안은 두 차례의 국회 상정을 거쳐 작년 6월, 진흥법이라는 명칭으로 공식 제정 및 공표됐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제정하는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올 6월 5일부터 본격 시행되는 것이다.
진흥법은 총 7장, 37개의 조항으로 구성된다. 이중 총칙과 보칙, 벌칙을 제외하면 주요 내용은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는 ‘건축서비스산업의 기반 조성’으로, 실태조사, 정보체계의 구축, 지식재산권 보호,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을 위한 세부 방안이다. 가장 역점을 기울이는 항목은 실태조사와 정보체계 구축. 진흥정책의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기초자료와 지속적인 통계자료 수집을 통한 정확한 실태 파악이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건축서비스사업의 국내외 시장 현황, 분야별 수주와 매출 추이, 종사자 수와 임금 등의 항목을 주기적으로 조사할 예정인데,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앞으로 데이터가 축적되면 보다 정책 수립에 효과적으로 활용되리라 기대된다.
두 번째 항목은 ‘건축서비스산업의 활성화’ 방안. 주목할 부분은 건축서비스사업자가 일정 비율 이상 입주하면 그 건축물 자체가 진흥시설로 지정된다는 점이다. 진흥시설이 되면 진흥세와 지방세의 감면 혜택을 비롯해 벤처사업 지원법에 따라 재정적 지원도 받을 수 있는 만큼 영세 사업자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추후 공동 장비나 공동 작업실, 공동 홍보 등으로 그 혜택의 범위를 확대한다면 새로운 유형의 공동 작업도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은 ‘건축물의 품격제고를 통한 건축 서비스산업 진흥’이다. 핵심은 우수한 건축물을 조성하기 위해 일정 규모(고시금액 2.3억) 이상의 공공건축물에서는 설계공모를 의무화 하는 것이다. 진흥법으로 인해 가장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부분이다. 또한, 완공작에서도 설계자의 의도가 일관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건축과정에 설계자의 참여도 의무화 된다. 공사완료도서에 참여 설계자의 확인서를 함께 제출하는 등의 변화는 설계공모의 취지를 살리는 데 제도적인 힘을 보태줄 것이다.
마지막은 ‘건축진흥원의 설립’이다. 건축분야의 정책연구와 개발, 진흥을 위한 사업수행을 도맡을 수 있는 공공기관을 건축진흥원으로 지정하거나 신설하여 앞서 언급한 시책들이 지속적으로 유지 관리되고, 개선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법률은 모두 아직은 초기 단계다. 때문에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건축 설계의 질적 향상을 위한 법률이 등장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이를 보다 나은 제도로 정착시켜 가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
좋은 공공건축을 위한 과제와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에 거는 기대
하나의 건물을 지으려면 몇 가지 법률을 검토해야 할까. 건축법, 주택법, 국계법, 전기법, 계약법, 산업법 등 어림잡아도 십여 개다. 즉 지금까지는 건축법조차도 건축을 전반적으로 코디네이션 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기술, 건설, 엔지니어링 등 건축 관련 분야에 비해 건축 자체의 발전은 상당히 더뎠는데, 이는 건축이 정부의 산업 육성정책과 관련된 법에서 모두 제외되어 있었던 탓이다.
다행히도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문제로 인식하고 지난 2007년 건축기본법(이하 건기법)을 제정했다. 건축정책의 기본 방향을 설정하고 건축정책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현 상황에서 건축에 관한 선언과 정의를 했다는 점에서 기존 건축법보다 한층 진일보된 법률이었다. 이러한 건기법에서 얘기하는 건축의 의미 위에 발주, 기준 등의 새로운 항목을 덧붙인 것이 금번 시행되는 진흥법의 핵심이다. 그간 흩어져있던 건축에 관한 법들을 모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건축의 의미와 그 진행과정을 바로 세워줄 진흥법이 좋은 공공건축이라는 결과물로 이어지려면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설계의 가치와 의미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건축은 단순히 물리적 형상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길 무수한 가치를 조율하고 구현하는 총체적인 작업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 공감대를 토대로 정당한 대가와 기준이 확립될 때, 건축은 더욱 좋은 건물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흥법의 시행으로 기획, 설계, 시공, 유지관리까지, 공공건축의 전 과정에서 이뤄질 긍정적인 변화들도 기대할만 하다. 먼저 기획의 강화다. 기획은 모든 작업의 시작임에도 지금까지는 누구도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기획 뒤에 이뤄지는 설계가 기획의 일부를 담당해 온 실정이다. 부실했던 기획은 설계 과정 중 수정되는 사례도 허다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발주처의 전문성 역시 강조되는 만큼 뚜렷한 목표 하에 다음 단계를 진행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불필요한 예산의 낭비를 막고 보다 효율적인 사업 진행을 위해 꼭 필요한 변화다.
설계에서는 업무에 대한 정당한 대가 기준의 설정을 기대할만하다.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업무 환경 개선은 더 나은 건축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또한, 설계자에게 공사 감독자로서의 입지를 보장해 줌으로써 설계의 가치를 시공, 나아가 유지관리 단계까지 지속적으로 투영할 수 있게 된다. 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의 생애와 함께하는 설계와 시공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덧붙여 좋은 공공건축을 위한 공모제도가 명목상의 공모로 그치지 않으려면 심사에도 더욱 내실을 기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공평한 분배’를 넘어서 적임자와 적절안을 선택할 수 있는 한층 진일보된 기준이 세워지는 게 그 첫걸음은 아닐까.
공공건축의 질적 향상을 위한 설계발주제도의 개선
최근 공공건축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물론 이전에도 건축기본법, 건설기술관리에서 건축설계에 대한 공모 장려 조항은 있었으나, 이것이 실질적으로 현장에 미치는 영향령은 상당히 미흡했다. 최근 6년간 공공건축만 해도 공모를 통해 선정된 경우는 채 20%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건축물의 질과 경제성은 결국 설계자에 의해 좌우된다. 때문에 설계료의 저렴함만으로 공공건축물의 설계자를 선정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최근의 중론이다.
이에 금번 시행된 진흥법에서는 보다 우수한 건축물을 조성하기 위해 설계비 추정가격이 고시금액(2.3억) 이상인 공공건축물은 공모를 통한 설계자 선정을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모 방식은 다양하다. 명확한 설계조건을 내건 ‘일반설계공모’, 기술심사와 설계안 심사로 디자인의 비중을 높인 ‘2단계 설계공모’,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하는 ‘제안공모’ 등, 사업의 목적과 규모에 따라 적합한 공모를 시행해 그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특히 완성된 설계안이 아닌 아이디어와 기술제안만으로 설계자를 선정하는 제안공모는 새롭게 도입되는 방식인데, 공모기간과 제출도서를 간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 일반 공모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디자인적 측면보다는 일상성과 사용자의 편의성이 강조되는 중소규모 공공건축물에 적용된다면 설계자와 발주처의 협의를 통해 최적의 안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다만 공모가 활성화되면 어떻게 심사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확보할 것인지가 쟁점으로 떠오른다. 지금까지는 심사의 과반수 이상을 발주처 관계자가 차지한다거나 설계 이외의 전문가가 동일한 비중으로 평가를 하는 등 전문성 없는 심사가 비일비재했다. 심사진의 명단이나 채점표, 과정 등은 대부분 비공개였기때문에 투명성 역시 번번히 문제가 되어왔다. 뿐만 아니라 CG, 모형 등 과도한 제출물에 비해 입상작에 대한 보상은 턱없이 부족해 모든 부담은 설계자의 몫으로 남겨지곤 했다. 설계자들이 꼽는 문제점도 ‘심사과정의 불합리화와 불투명’과 ‘참여비용 과다’가 대부분이었던 만큼, 추후 가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에 진흥법의 설계공모운영지침(안)에서는 심사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 심사위원의 자격과 심사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 지침을 규정하고 있다. 5~9명으로 구성하되, 건축사 또는 설계분야 조교수 5년 이상의 경력자 등을 위원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주기관의 소속 위원도 30% 이내로 한정된다. 투명한 심사를 위해 심사위원의 명단과 심사채점표, 심사과정의 공개도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제출도서는 최대한 간소화하고 예정 설계비의 10%(최대 1억)을 공모 입상작에게 지급해 공모 참여자의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이렇듯 진흥법을 통해 공모가 의무화되면 전체 발주건수 대비 설계공모 건수는 약 2배, 설계비 금액규모로는 약 1.5배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황에 시달리는 건축 설계시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렇듯 진흥법이 시행되고 공공건축 설계발주제도가 개편됨에 따라 지자체와 건축설계사무소의 대응환경도 크게 변화할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개편된 제도의 내용을 발주처, 건축가, 협력업체와 같은 관련인들이 공유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건축서비스산업의 도약을 위한 각계의 협력과 지속적인 노력이 수반된다면, 다음 개정때는 한층 더 현실적인 법령들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건축서비스사업 활성화의 단초가 될 진흥법의 시행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글 / 전효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