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여정
진중하고 차분한 움직임을 유도하는 색감과 선이다. 짙은 먹색으로 단장한 내부 분위기가 규모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막힘 없이 이어지는 공간의 흐름 역시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 빛깔이 한결 밝아지는 마당으로 나서면 그제야 작은 마당을 끼고 ㄱ자 형으로 앉아 있는 전형적인 근대식 가옥이구나 싶다.
집은 경주의 대표적인 유적지들과 상권이 발달해 있는 황오동 황리단길 사이에 위치한다. 과거 일반대중들의 보편적인 거처이던 오래된 개량 한옥으로 전통 한옥과는 다른 모습이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황오동 거리와 동네 정취가 고스란히 반영된 작업으로, 시대의 삶에 맞춘 개량 한옥이기에 전통성을 지키기보다 변화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어 보인다.
담장과 대문은 기존과 다른 마감재로 교체되었을 뿐 시대성을 드러내는 요소로서 그 형상이 그대로 유지 및 보존되고 있다. 근대식 양옥집 담장 같은 그 모습이 목재 대문 및 한옥과 다소 어색하게 조우하는 듯하지만, 그 자체가 시대성을 발현하는 하나의 장치처럼 읽히기도 한다. 본채의 외벽에서는 과감하게 구조재가 가려진 채 현대식으로 마감되어 기능성과 사용성을 높이고 있다.
리모델링이긴 하지만 오래된 목구조의 부식이 고려되어 실제로는 거의 대부분에서 교체가 이루어져 있다. 특히 목구조 기단부는 신축에 가까울 정도로 부재가 교체되어 부식과 부재의 처짐을 해결하고 있다. 서까래와 그 상단의 흙과 기와 역시 모두 철거되고 재시공된 경우다. 들보와 기둥, 인방 일부 등도 교체되어 있다. 지붕의 내부 구조 또한 각재 서까래와 루버 덮개로 마감되어 있는데, 한옥보다는 일반 목조건축에 가까운 투박한 지붕의 모습을 살리기 위함이다.
내부 평면 계획에서도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져 있다. 한옥에서 볼 수 있는 칸의 개념은 살아 있지만 물리적인 공간의 구획은 사라지고 없다. 대청을 중심으로 칸마다 구획되어 있던 비내력벽이 모두 철거되고, 개방된 하나의 구조로 전체 공간이 구성된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거실, 욕실, 주방, 침실 등 각각의 공간 개념이 기존의 칸을 나누던 구조 부재를 기준으로 나누어져 배치되어 있다. 기능별로 나뉜 한 칸 한 칸이 시각 및 물리적으로 하나로 이어져 흐르기에 내부 공간은 훨씬 여유롭고 넉넉하게 여겨진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거실 칸은 중정에서 연장되는 영역인 만큼 외부와 내부의 성격을 모두 갖는 공간으로, 외부와 동일한 높낮이로 바닥이 낮게 형성되어 있다. 거실과 연접하는 짙은 빛깔의 석재 욕조는 마당으로의 전망이 가장 좋은 지점이다. 욕조 전면에 출입구에서 이어지는 복도가 구성되어 입구성을 가지고 있어 공간의 시작을 알리는 영역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전형적인 개량 한옥에서 경험되는 복고적인 분위기가 여전히 감지된다. 시대성을 다루는 공간의 이야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다. 동시에 달라진 시대의 달라진 공간적 코드들이 한옥을 더욱 다양한 형태와 색감과 재질로 전개시킬 수 있다는 변화의 가능성과 확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작품명: 소여정 / 위치: 경북 경주시 황오동 85-90 / 설계: 스테이 아키텍츠 / 프로젝트팀: 홍정희, 고정석, 김판수 / 시공: J-ONE international / 조경: Botanical Studio Sam / 브랜딩: Hydraft® / 조향: Pale Blue Dot / 패브릭 : Somidang / 건축면적: 45.54m² / 완공연도: 2022년 / 사진: 홍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