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Folie’라는 용어가 건축계에 등장한 지는 그리 오래지 않다. 심지어 ‘어리석은’ 이라는 그 어원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까지 하다. 곧 사라질, 다른 무언가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아 장식적인, 실용적이지 않은 설치물을 말한다.
1987년 프랑스 파리에 지어진 라빌레뜨 공원에는 35개의 빨간색 폴리들이 곳곳에 자리한다. 당시로써는 그야말로 혁신적인 시도였다. 설계를 맡은 베르나르 츄미는 공원 이용자들이 폴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도록 의도했고, 실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렇게 사용되고 있다. 최근 구조 기술과 신소재의 개발로 수없이 다양한 폴리가 우리 주변에 나타나고 또 사라진다. 가설 건물을 뜻하는 ‘파빌리온’과도 비슷하지만, ‘폴리’는 기능과 용도에 구애받지 않으며 더 쉽고 빠르게 만들어진다.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설치물에 가까워 작가의 실험 정신이 구현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한국에서는 2011년 광주비엔날레가 ‘광주폴리’를 처음 선보인 이래 올해 세 번째 광주폴리를 계획하고 있다. 1차 폴리는 당시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공동 총감독이었던 건축가 승효상과 중국인 예술가 아이웨이웨이가 제안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10개의 폴리 디자인에 참여했다. 많은 사람이 오가고 머무는 광장이나 거리 곳곳에 설치돼, 누구나 만져보고 경험할 수 있는 폴리는 건축이 대중에게 즐겁게 다가갈 수 있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모란폴리, 묘원에 피다
서울의 동쪽 끝을 벗어나 서울춘천고속도로를 30여 분 달리면 남양주 마석에 자리한 모란공원에 닿는다. 문익환 목사,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전태일 노동운동가, 박종철 민주운동가 등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의 산증인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이곳 초입에, 노란색 푯말이 가리키는 파란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초록이 우거진 비밀의 정원 깊숙이 모란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1990년 개관한 모란미술관은 조각전문미술관으로 출발했다. 8천 6백여 평에 달하는 드넓은 묘원에 국내외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2002년에는 건축가 故 이영범이 설계한 수장고와 모란탑(C3 0212 게재)이 들어서며 건축계에도 이름을 알렸다. 최근에는 대중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전시의 폭을 넓히고 연계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다. 2015년, 개관 25주년을 맞아 모란미술관은 건축으로도 한 발 다가섰다. Creative Moran, The New Art Platform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모란 폴리’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첫 회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모란미술관의 지정학적 위치를 기반으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고민해 보고자, Between Life and Death 라는 주제를 정하고 전 세계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국제공모를 열었다. 총 107점의 적지 않은 수가 출품된 가운데,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심사위원장을 맡아 대상 1작과 10개의 입상작을 선정했다. 2회를 맞은 올해의 주제는 ‘Peaceful Dynamics’. 모란공원의 고요함 속에서 피어나는 역동적인 에너지를 형상화했다. 올해는 75명(팀)이 참가했으며, 스페인 건축가 안톤 가르시아 아브릴Anton Garci-Abril이 심사위원장을, 최춘웅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신창훈운생동건축사사무소 소장, 임성훈모란미술관 학예실장, 홍민관모란미술관 기획실장이 심사위원을 맡아 총 10팀을 선정했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1000달러의 폴리 제작비가 지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