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우재 守愚斎
집이 자리한 마을은 서울 근교로, 현재 6백 가구가 어우러져 있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곳이다. 사방이 나지막한 산으로 위요되어 있는 땅의 형상이 염통을 닮았다고 해서 예로부터 염곡동이라 불린다. 대지는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마을의 북쪽 끝 언저리에 자리한다. 마을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그곳 경계선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을을 관장하듯 서 있다. 신축이긴 하지만 1970년대에 지어진 집에서 10년 넘게 살아온 장년의 부부가 현재 삶에 맞추어서 동일한 장소에 새롭게 지은 집이다.
집의 사면이 모두 다른 모습이다. 대지가 면한 사면의 조건이 모두 다른 까닭이다. 도로와 접하는 남쪽 면은 담장으로 가리는 대신 세 개의 매스가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진 채 노출되어 도로변을 위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쪽 면에는 긴 매스가 자리하여 이웃집의 큰 매스에 대응하며 내부를 아늑하게 안정시킨다. 자연과 면하는 북쪽은 시각적으로 활짝 열려 있어 돌벽과 그 위로 뻗어 올라간 수목의 운치를 집안으로 성큼 들이고 있다.
동쪽으로는 수형이 장엄하고 가지들의 위세가 대단한 것이 얼핏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느티나무와 맞닿아 있다. 6백년 수령의 살아 있는 역사 같은 존재에 대해 집은 조심스럽게 의식하는 모습이다. 보호수로 지정된 신목 같은 이 나무의 사시사철 변화에 마당의 풍경을 맡기고 있다. 특별히, 나무 아래 자리하는 정자 같은 작은 방 하나가 나무와 조우하는 모습이 의도된 오브제처럼 집에 고요한 정취를 연출해 낸다. 때로는 성소로, 때로는 사색의 처소로 쓰이기를 바라며 어두운 집이라는 의미로 ‘현와玄窩’라 불리는 방이다.
대지의 앞쪽 도로와 뒤편 녹지 사이에는 4미터의 높이 차이가 있다. 이런 이유로 집의 주된 층은 기존 집보다 다소 높게 도로면에서 3미터 위에 자리한다. 따라서 입구는 도로면과 같아서 진입마당에서는 사진 전문 갤러리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진입마당과 주 층의 마당 사이를 가로지르는 통로 덕분에 내부 공간 구성이 다양하고, 이를 통해 보이는 풍경도 다채롭다.
식당, 침실, 욕실 같은 기본적인 공간과 가족공동체를 위한 거실이나 오락실 외에 사랑방, 문방, 정자 등 특별한 공간들이 눈에 띈다. 제3의 공간으로 존재하며 한국 전통가옥이 갖추고 있던 그 특유의 정서와 정신세계를 고취시키는 일종의 장치들처럼 보인다. 어리석음을 지키는 집이라는 의미의 수우재守愚斎, 집의 형태는 바뀌었지만 오랜 세월 함께해 온 주어진 환경을 여전히 존중하고 족하며 음미하는 순수한 감성과 태도를 견지하는 공간이다.
작품명: 수우재 / 위치: 서울 / 건축가: 승효상 / 구조: The Naeun Structural Eng. / 기계: SeAh Eng / 전기: WooLim E&C / 시공: YoungJo Construction Co. / 대지면적: 380m² / 건축면적: 188m² / 연면적: 564m² / 완공년도: 2017 / 사진: 김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