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졸당
에디터 현유미 부장 글 김소원 디자인 한정민
자료제공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의 골목에 자리한 수졸당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이자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교수의 자택이다. 유홍준 교수는 건축가 승효상을 찾아와 ‘비싼 것, 편하지 않은 것’을 해결할 주택 설계를 의뢰했다. 경제가치가 우선된 토지와 자산가치를 내세운 주택관의 영향으로, 소유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지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는 풍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집 안의 공간과 그곳에서의 삶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구조와 형태에 치중할 수밖에. 사는 사람의 정체성도 없거니와 그러한 집들이 모인 이웃 없는 동네가 생겨나는 이유다.
대지면적 234.4m², 연면적 195.5m²의 2층짜리 주택 수졸당은 ‘보잘 것 없는 집’이라는 뜻이다. 동시에 기와가 없는 현대식, 도시형 한옥으로 지어졌다. 전통 창호 격자로 만든 대문을 넘어서면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아담한 마당이 보이고, 낮은 담과 옛집을 연상시키는 ㄷ자형 건물 배치에 둘러싸인다. 마루가 있는 마당 말고도 흙마당, 뒷마당도 배치되었다. 마당의 바닥은 각기 다른 소재로 채웠다.
마당과 방 사이에는 연결통로를 두어 서서히 진입하는 동선을 만들었다. 그 결과 방 사이가 멀어지기도 하고, 외부를 통해서만 들어가는 공간도 생겼다. 마냥 편한 것을 계산해 만들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건축가는 불편한 움직임은 곧 사유로 이어지고, 가족의 단란한 생활을 만들어 결국 윤택한 삶이 된다고 말한다.
수졸당은 여백으로 켜를 만들고 공간을 채웠다. 과연 건축가 승효상의 건축철학 ‘빈자의 미학’이 시작된 집답다. 균형 잡히지 못한 부의 축척에만 몰두하는, 가치가 왜곡된 사회에서 빚어지는 건축은 더 높게, 더 크게, 더 위엄 있게만 보이는 데 관심을 둔다. 자연히 그 속에서의 삶의 가치는 무시되고, 껍데기만 남은 공간이 양산될 뿐이다. 건축가는 이러한 물질 사회에서 정신에 가치를 두고 작은 땅에서 절제한 공간을, 이웃과 연결된 낮은 공간을, 되려 반기능적이어서 삶이 진솔해지는 공간을 만들어 사유하게 하고 반추하게 한다.
작품명: 학동 수졸당 / 위치: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102-14 / 설계: 승효상 / 시공: 삼협종합건설 / 건축주: 유홍준 / 용도: 단독주택 / 대지면적: 234.40m² / 건축면적: 175.54m² / 연면적: 195.5m² / 건폐율: 50% / 용적률: 68.2% / 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마감: 외단열 시스템 / 설계기간: 1992.5~1992.8 / 시공기간: 1992.9~1993.5 / 완공: 1993 / 사진: 오사무 무라이, 516스튜디오_김잔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