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병원
에디터 현유미 부장 글 김소원 디자인 여승윤
자료제공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1993년 건물이 완공되었을 당시 코르텐 강으로 뒤덮인 외관은 병원 건물로서는 생소한 시도였을 것이다. 가운에 홀을 중심으로 양옆 그리고 뒤편 진료실이 늘어선 복도 양끝 모서리까지 짙붉은 코르텐 강의 네 개 박스가 솟은 이 건물은 실제로도, 창백하고 무미건조한 백색 구조가 일반적인 병원 건물의 이미지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건축가 승효상은 장식 차원에서의 결과일 뿐 병원이 이뤄 낸 진료 시스템의 변화를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 그것이 곧 병원에 대한 건축가의 인식을 바꾼 계기였으며, 의사와 환자를 배려한 공간의 시작이 되었다.
해당 건물은 현재 나리병원이 되었지만, 설계된 과거에는 미즈메디병원의 전신인 영동제일병원이었다. 종래의 진찰시스템은 상담과 진찰을 한꺼번에 진행했다. 정해진 공간에서 의사는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고, 환자가 상담의자와 진찰대를 오가는 식이었다. 의사가 다른 환자를 상담하거나 진찰하는 사이에 같은 방의 구석에서 옷도 갈아 입어야 하는,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될 수 없는 구조였다.
건축가는 미국의 산부인과를 견학하고 와서, 이러한 문제점을 간파하고 건축주인 원장과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데 합의하기에 이른다. 상담실과 진찰실을 분리하고, 때로는 상담실 하나에 두 개 진찰실 한 단위로 묶어 환자는 조용히 방에서 의사를 기다리고 의사가 방들을 바삐 돌아다니는 구조. 이렇게 하면 의사의 노동력은 배가 되지만 그만큼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니 산부인과 같은 성격의 공간에 적절했다.
따라서 진료 유닛 방식이 공간 구성의 기초 단위가 된다. 이들이 그룹별로 나뉘다 보면 소규모 대합실이 등장하고, 이를 가운데 마당을 두고 적절히 분배한 결과가 이 병원의 쾌적한 공간 구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비단 환자의 입장만을 고려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병상과 진료실을 오가는 동안 밝은 햇살과 계절을 알리는 자연을 보게 하는 드라마틱한 복도는 병원이 반복되는 일상인 의사들의 생활을 생동감 있게 자극한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에게 살아 있는 자연의 신비를 일깨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할지. 물론 환자에게도 그러한 생동감은 병원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 때문에 외부 공간들이 병실과 진료실 곁 곳곳에 만들어졌고, 하늘을 담는 옥상 정원이 자리하게 되면서 지금과 같은 병원의 조형을 결정지었다.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붉은빛 코르텐 강 역시 생동하는 힘의 또 다른 표현이 될 것이다.
작품명: 나리병원 / 위치: 경기도 김포 / 설계: 승효상 / 시공: 광부종합건설 / 전기, 기계설계: 우림 전기, 세아 엔지니어링 / 건축주: 이종찬 / 용도: 의료시설 / 대지면적: 1,351.70m² / 건축면적: 572.63m² / 연면적: 3,427.77m² / 건폐율: 42.36% / 용적률: 235.87% / 규모: 지상 8층, 지하 1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마감: 내후성강판 / 설계기간: 2000.9~2001.2 / 시공기간: 2001.2~2002.6 / 사진: 문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