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체
서울을 건축으로 보다
글로벌이라는 단어조차 진부해져 버린 오늘날 ‘지방색’이라는 것이 여전히 유효할까? 혹 그렇다 한들 통합과 융합이 시대적 가치로 자리 잡은 현대 사회에서 ‘지방색’을 찾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근본적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책 ‘서울체’가 출간됐다.
평생 한국 현대건축을 연구해 온 건축 석학 박길룡 교수와 건축전문 사진작가 이재성이 함께 만든 이 책은 각 지역의 특질과 현대건축의 연관성을 밝혀나가는 지난하고도 치열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5년 전 ‘제주체’를 통해 건축에도 지방 고유의 색이 있음을 알린 이들은, 그 두 번째 결과물인 ‘서울체’를 통해 ‘한국 현대건축의 지리지’ 연작을 만들어 간다.
저자는 600살이 넘은 서울이 갖고 있는 지리적 특징과 시간의 축적은 현대의 시간과 결합하여 새로운 서울성이 만들어진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자라난 현대 건축의 특징을 찾는 것이 ‘서울성’이라고 말한다.
외계에서 온 건축가도 필히 서울의 환경을 무시하지 못한다고 확신하는 저자는 건축이 갖고 있는 주변 환경과의 관계에 주목한다. 넓게는 북한산과 한강, 좁게는 경복궁 등 전통과 관련된 맥락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서울의 현대건축은 과거의 고유의 특질에 현대사회가 만들어 낸 정치 경제 문화를 결합하여 탄생한 것이라고 밝힌다. 여기에 건축가 개인의 고유성이 더해진 결과가 ‘서울체’라는 설명이다.
책에는 서울의 건축물 수십만 채 중, 서울의 특질과 관련한 11개의 키워드로 엄선한 140여 개의 작품이 실려 있다. 서울의 나이테, 기념적 기억, 도시·문화·장소, 한강이 품고 있던 것, 자본의 도시, 대학의 건축, 도시 건축·스마트 빌딩, 테크놀로지·몸의 감각, 낯선 것에 대한 자유로움, 문화 교차, 착한 건축이다. 이 키워드들은 단번에 추출된 것이 아니라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저자의 ‘서울의 건축’에 대한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피드백을 통해 40여 년 만에 완성한 것이다.
어쩌면 이들이 말하는 지리적 특징은 시간과 공간이 하나로 통합된 현대사회에서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유전자에 내재되어있는 지방성을 찾아낸다면, 우리의 문화적 다양성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이 책에서 만나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