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그 사회를 대변한다. 사회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면서 새로운 타입의 건물들을 탄생시킨다.
건축가 임재용은 이것을 건축유형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사회, 경제, 문화의 전반적 상황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며 이를 반영해 프로그램을 재해석함으로써, 꾸준히 새로운 건축유형을 만들어간다.
그 결과물들을 모은 OCA 20주년 작품집이 출간됐다. 다섯 권으로 구성되는데, 1권은 서문에 해당하며, 다른 4권에는 그의 대표 작들이 수록돼있다.
1권에서는 ‘비트루비우스와의 대화’ 형식을 빌려, 건축가로서의 성장 과정을 얘기한다. 대학교 1학년 여름, 인도에서 마주친 타지마할의 반사연못이 자신을 건축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는 일화부터, 80년대 중반 미국에서의 유학과 실무 경험은 건축가 임재용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되돌아본다. 그 외에도 건축가는 시대를 반양한 프로토타입을 제시해야 한다던가, 건축과 도시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 그리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공건축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 속에서는 그의 건축적 관심과 철학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2권부터 5권까지는 각 권마다 부제를 붙여, 그가 만들어가고 있는 건축유형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본다.
개개인의 삶의 방식, 여러 사람이 모여사는 방식, 더 나아가서는 마을을 만들고 도시가 형성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삶의 방식’. 끊어진 도시 풍경의 맥을 이어주는, 도시적 작업을 모은 ‘진화하는 주유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자연을 따라 흐르는 건축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끔 하는 ‘바다를 보는 101가지 방법’. 인간과 기계, 그리고 자연이 공존하는 공장에 대해 탐구한 ‘공장미학’이다.
이 작품집은 이처럼 색다른 유형 구분만큼이나 책을 만드는 방식도 실험적이다. 책은 ‘책장’이라는 대지에 세운 또 하나의 건축이기 때문이다. 책 중앙을 레이저 커팅으로 잘라냄으로써 만들어진 다섯 권의 다양한 단면들은 새로운 건축적 풍경을 만들어 낸다. 책을 꽂는 순서와 방식, 책이 놓이는 장소에 따라 주변 책들과 함께 풍요로운 사물들의 도시를 구성한다.
또한, 커팅으로 잘려나간 부분은 책을 펴는 순간 하나의 ‘창’ 이 된다. 책 읽는 장소에 따라 그 속에 담기는 풍경도 바뀌며, 주변 환경은 책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환경, 그리고 그 가운데 형성된 우리 사회의 모습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는 임재용의 건축을 만나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