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공간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가능한 다양한 차원에서 공간적 특성을 살펴야 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모티브를 얻은 서울 탐방기 책이다.
80년 전 경성 시내를 주유했던 한국 최초의 근대적인 거리 산책자인 소설가 구보 씨를 2013년 지금의 서울 거리로 호출해 ‘산책자 구보 씨‘가 서울의 일상을 미시적으로 탐사하며, 소설, 시, 회화, 조각, 대중가요 등의 문화 텍스트를 시대와 분야를 넘나들며 풍성하게 인용해 벤야민식 도시 읽기를 시도한다.
책은 주인공 구보가 2013년 어느 날 아침 집을 나서면서 시작되고, 자정을 지나 귀가하면서 마무리된다. 구보 씨처럼 21세기의 구보도 하루 동안 서울 거리를 산책하는데, 80년의 세월을 거치며 급격히 넓어진 서울을 돌아다니기 위해 도보 외에도 버스, 지하철 등 다양한 교통수단의 도움을 받는다.
소설가 구보 씨가 식민지 경성의 사대문 안쪽을 주로 걸었다면, 2013년의 구보의 산책은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출발해 광화문과 을지로 일대, 홍대 입구, 코엑스, 가로수길, 강남역으로 이어진다.
구보의 산책을 통해 발길이 닿는 곳마다 다양한 텍스트와 사진들에 대한 해석이 뒤섞어 동시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욕망의 근원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서울 곳곳에서 자본주의의 욕망이 꿈틀거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아케이드의 사전적 의미는 ‘아치로 둘러싸인 공간. 아치형의 지붕이 있는 통로, 특히 양쪽에 상점이 있는 통로’다. 현대에서는 상품 자본주의의 원조 신전으로 상품 소비 공간으로 인식되어 있다.
실내와 실외의 경계가 없는 공간인 아케이드는 모든 공간을 실내화하여 실외적인 느낌을 낸다. 아케이드는 사람이 만나는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모이고 자본이 집중되는 ‘자본주의의 신전’이 되게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상품 소비공간으로 전유 되었던 아케이드가 작가에 의해 건물과 건물을 잇고 길과 길을 연결하며 사람과 사람을 매개하는 소통의 네트워크로 재해석되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도시 인상기에 그치지 않고 지극히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서울의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서울에 사는 사람에게도 그곳에 살지 않는 사람에게도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작가가 남긴 이 기록은 공간에 스며든 기록을 되새겨 우리가 나아가야 할 좌표를 탐색하는 21세기판 아케이드 프로젝트이다. 책을 읽으며 구보 씨가 서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