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당
고목의 연륜이 두껍게 묻어나는 대문 뒤로 의외의 모던한 공간이 반전처럼 펼쳐져 있다. 반투명한 한지로 덮인 채 간접조명을 밝히고 있는 벽면의 모습은 마치 백색의 초롱이 반갑게 마중 나와 길을 안내하는 것 같다. 자갈이 깔린 바닥에는 디딤돌이 단정하게 길을 내고 있고, 천장에는 고목의 골조가 바닥의 반듯함과는 대조적인 모양새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옛집이 오늘날의 감각으로 재해석된 공간임을 몸소 설명하는 모습이다.
1960년대에 지어진 한옥 민가로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다. 조부로부터 3대째 이어지면서 필요에 따라 혹은 계획 없이 덧붙여진 공간들, 마당 한쪽에 자리한 둔탁한 콘크리트 구조 등이 불필요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칫 한옥의 고유성을 흐리는 요소들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보존 상태가 괜찮은 부분들과 사용 가능한 공간들 위주로 섬세한 판단과 작업이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된다. 옛것의 아름다움은 선명하게 남기거나 강조하고, 현대적인 감각과 편리함으로 교체할 부분은 옛 감각과 색감을 존중하며 조화를 꾀하고 있다.
집의 시작을 알리는 백색의 길은 현대와 옛것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전이공간으로, 두 시공간의 조화를 더욱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 디딤돌을 따라 나 있는 공간 정면에 온수탕이 자리하는 것 역시 주목하게 된다. 마당의 역할이 적은 구조 가운데 별도로 분리된 온수탕은 옛집 특유의 정취와 감성을 상징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실제로 탕의 몸체가 되는 편백나무의 향이 고요한 백색 공간을 은은하게 채우고 있어 심신을 안정시키기도 한다.
디딤돌이 끝나는 지점에 한옥 구조와 콘크리트 구조를 이용한 담장이 이어져 있다. 그 담장을 뒤로 한 채 툇마루를 딛고 집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진입과 동시에 마주하는 주방과 거실에 넓은 창이 나 있어서 자갈이 깔려 있는 자그마한 마당과 전통 문양으로 장식해 놓은 담장이 한눈에 내다보인다. 처마를 타고 창으로 드리워지는, 혹은 툇마루에 잠시 걸터앉을 때 마주하는, 빛과 마당의 풍경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며 옛집 특유의 운치와 다채로운 감성을 선사할 것이다.
침실, 거실, 별채의 온수탕, 샤워실, 파우더룸 등 공간 전체적으로 옛것에 대한 해석과 현대식의 편리함을 연결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한눈에 이해하게 된다. 한옥 특유의 따뜻함과 고즈넉함, 현대식 공간의 간결함과 편리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감성 숙소답다.
작품명: 채원당 / 위치: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9길 38-17 / 설계: 시옷스페이스 / 건축면적: 91.4m² / 완공연도: 2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