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 주택지
인구 폭증 시대 경성의 주택지 개발
우리나라에서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가장 먼저 집값 안정화와 주거 공간 개선 방안을 담은 정책들이 발표되곤 한다. 주거 문제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어떤 생계의 문제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반증이다. 이런 주택지 개발의 열풍은 현재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일까? ‘경성의 주택지: 인구 폭증 시대 경성의 주택지 개발’은 우리나라 주택지 개발의 기원을 추적하고 그 속에 담긴 주택지에 대한 열망과 좌절을 조명한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주택 공급은 짓고자 하는 사람과 지어주는 사람만 존재하는 일종의 주문생산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며 경성의 인구가 갑작스레 늘자 주택난을 야기했고, 경성의 주택 공급 방식도 바꿔놓았다. 개발자와 개발사에 의해 다양한 형태의 주택지가 등장했고, 지속적으로 대규모 개발이 이뤄지는 경성은 새로움으로 가득한 ‘이상 도시’가 되었다.
저자는 당시의 주택지에 일제강점기라는 식민지적 현실이 구체적이고도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성리학과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형성된 성곽도시 한양은, 식민지라는 시대적 상황과 새로운 문물의 유입 속에서 해체된다. 궁궐 일부나 왕족의 주택지는 사택지가 되고 물리적 경계였던 도성은 허물어진다. 이 같은 변화는 오히려 정치적인 이유로 세워진 일제의 건축물보다 그 규모 면에서 더욱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이처럼 급격한 변화 속에서 형성된 20세기 전반 경성의 주택지와 주택은 건축적·도시사적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기존 경성의 주택지에 대한 책들과 비교해 이 책의 주목할 만한 점은 개발로 인한 물리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그로 인해 갈등을 겪었던 원주민과 개발 주체, 그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했던 건축가 및 시공업체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12개의 꼭지로 나누어 살펴본다. 12개의 주제를 잡고 각 주제에 해당하는 서울의 동네를 택해 그곳에서 일어난 주택지 개발과 주택의 변화를 다룬 식이다. 가회동, 북촌, 인사동, 삼청동, 후암동, 장충동, 신당동, 동숭동과 혜화동, 돈암지구, 흑석동, 충정로, 관사단지, 동네마다 달랐던 개발 주체와 개발 양상, 개발 화두를 비교하며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당 지역에 쌓인 그곳만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주택지 탐구는 여전히 개발 열풍과 주택난의 문제를 겪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내가 사는 곳’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