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도서관
하얗게 접힌 종이배 한 척이 아파트를 사이를 떠다닌다. 살랑거리며 불어 오는 미풍에도 타공된 외피를 따라 가벼운 움직임이 이는 듯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공간을 감싸고 도는 그 역동성이 더욱 격하게 다가오지만, 막상 요동치는 외피를 통과해 종이배 안으로 승선하고 나면 이내 잠잠하고 고요해진다.
준공 후 30년이 지난 가양8단지 임대 아파트 단지 안에 위치하는 공용 도서관이다. 1,110 세대가 거주하고 있는 단지의 유일한 커뮤니티 시설인 기존 관리동 건물을 리모델링한 작업이다. 전형적인 노후 건물로 지하에는 기계 전기실, 1층에는 경로당과 관리 사무소, 2층에는 3년 전부터 폐업한 독서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2층 독서실 공간을 작은 도서관으로 변경하고 리모델링에 따른 구조를 보강하는 동시에 외관을 개선시킨 프로젝트다.
기존의 콘크리트 기둥과 보가 여러 번의 덧칠로 인해 기괴해진 모습으로 정면에 드러나 있어서 우선적으로 제거되고, 경로당 외부에 설치되어 있던 데크도 노후가 심해 재정비된 모습이다. 기존 외장의 치장 벽돌은 백색 페인트로 옷을 갈아입은 후, 그 위에 또 하나의 하얀 날개 옷을 덧입고 있다. 여덟 개의 마름모 형태로 구성된 타공 복합 패널과 EX 메탈 패널이 조합된 구조물이다. 타공들 사이로 기존 건물이 속살처럼 은은하게 비쳐 보여 리모델링 건축이라는 상징성이 강조되고 있다. 책 읽는 공간을 지식을 탐험하는 여행에 비유하여, 타공 패널을 통해 백색 돛을 활짝 펼친 종이배의 형상으로 공간을 조각하고 있다. 메탈이 갖는 경쾌한 이미지와 바람에 흩날리듯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조형성이 자연스레 이목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내부에서도 여행을 떠나는 배의 구조를 모티프로 아치 형태가 반복되어 있다. 아치형 구조는 도서관의 주요 요소인 책장 역할을 하는데, 파란 계열의 색상 변화를 통해 파도의 일렁이는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한다. 아치형 책장 사이에는 소파형 및 창가형 좌석과 더불어 경사 선반 형태의 책장이 계획되어 흥미진진한 공간이 구성되고 있다. 도서관의 중앙부에는 긴 테이블과 작은 테이블, 테이블형 전시 책장 등이 배치되어 재미와 함께 다양한 필요가 충족되고 있다.
여행 도서관의 맞은 편이자 리프트에 인접한 공간에는 헬스 케어와 문화 강좌를 위한 공간이 자리한다. 노랑 원색으로 마감된 것은 단지 내 노약자가 많은 점이 고려되어 공간 전반에 인지 디자인이 적용된 때문이다. 덕분에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단순한 리모델링 작업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후되는 임대 아파트를 어떻게 재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공간 복지‘라는 개념으로 이어진 사례다. 단지 내에 방치되어 존재하는 실내외 유휴 공간을 발견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단지 전체의 거주 환경을 개선시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첨단의 도시 이면에 방치된 채 늙어가는 삶과 공간에 관해 질문하고 답한 것이다.
작품명: 여행도서관 / 위치: 서울시 강서구 가양1동 1482번지 가양8단지 아파트 단지 내 / 설계: 더코너즈 건축사사무소(홍종화, 최경철), 건축사사무소 클라우드나인(한태희) / 설계팀: 한태희, 홍종화, 이지홍 / 시공: 미래골드건설 / 구조설계: SH건축구조기술사사무소 / 건축주: SH서울주택도시공사 / 용도: 주민공동시설 (도서관, 주민운동시설, 북카페) / 대지면적: 30,530.88m² / 건축면적: 288m² / 연면적: 769.5m² / 건폐율: 18.32% / 용적률: 202.89% / 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 높이: 9.9m / 구조: 연와조+철골조 / 외부마감: 지정벽돌, 유공복합패널, 익스팬디드메탈 / 내부마감: 도장, 지정타일 / 설계기간: 2019.1~2019.7 / 시공기간: 2019.8~2020.1 / 완공: 2020 / 사진: 송유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