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샷시
삶의 방식이 건축의 형태로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는 아마도 ‘집’이 아닐까. 뉴스에서는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섹션을 막론하고 ‘집’을 주제로 한 기사가 쏟아지고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집’ 얘기를 하느라 바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파트’ 혹은 ‘집값’일 테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이제는 ‘빌라’까지도 그 관심의 대상에 포함된 듯하다.
‘빌라’가 우리 사회에서 이만큼이나 주목받은 적이 있었을까? 단언컨대 없다. 빌라로 대변되는 다세대·다가구주택은 사회적으로는커녕 건축계에서도 담론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 채 철저한 익명의 건축으로 존재해 왔다.
이상한 일이다. 아파트가 지금처럼 급격히 증가하기 전까지만 해도 절대다수의 삶을 책임져왔던 주거의 형태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삶의 터전이, 이토록 관심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보통의 건축을 누구보다 따스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건축가 권태훈의 신간 ‘빌라 샷시’가 출간됐다.
저자가 12년 남짓 살았던 청파동에서 관찰한 열 채의 빌라를 직접 그리고 분석한 도면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전작인 파사드 서울에서 도심의 사무소 건물을 다뤘던 그는 이후 3년 만에 선보인 후속작을 통해 동네 다세대주택, 한층 더 흔하고 소소한 건축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확장시킨다.
‘빌라 샷시’. 들어본 듯하면서도 낯선 이 용어는 ‘동네 빌라에 덧붙여진 샷시로 된 공간’을 지칭하기 위해 저자가 붙인 이름이다. 계단 위에 지붕을 세우고 벽을 덧대며 여기저기 공간을 확장한 동네의 ‘빌라 샷시’들을 도면으로 그려나가며, 실질적인 필요에 따라 집을 고친 그 흔적들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이고 현실적인 건축이라고 얘기한다.
책은 총 다섯 개의 챕터와 부록으로 구성된다. 정교한 도면을 통해 빌라 샷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한편, 빌라와 샷시의 역사와 내력을 살펴보고 유형적으로 분류하여 생성된 과정을 추적하기도 한다. 부록에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 샷시를 제작한 실무자들과의 인터뷰까지 담겨 있어, 그 자체로도 하나의 리서치로 부를 만큼 높은 완결성을 지닌다.
평범한 건축을 비범하게 바라보는 이 책은,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의미한 출발점을 제시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