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이 힘이다
배형민과 최문규의 건축 대화
건축가의 건축적이지 않은 그림과 비평가의 비평답지 않은 글을 담은 책 ‘의심이 힘이다: 배형민과 최문규의 건축 대화’가 출간됐다.
학자와 건축가의 만남이라 하면 왠지 어려운 용어들로 점철된 문답이 오갈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에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여 친구가 된 두 사람의 솔직하고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가식과 무거움을 털어낸 편안한 대화 속에서, 그들은 현실에 대한 통찰을, 비단 건축의 길이 아니더라도 동시대에 창작의 가시밭길을 걷는 후배들에 대한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배형민은 최문규와의 첫 만남을 돌아보며 대화의 문을 연다. 2005년 동네 이웃으로 만난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의 삶과 건축을 공유해 왔다.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해 담벼락에 기대어 잠들었던 어린 시절, 재능이 없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절망했다가 우연한 계기로 다시금 건축가의 꿈을 키우게 된 이야기,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시작하며 겪었던 악몽 같던 2년 등의 인생 여정부터 시작하여, 배형민이 설계와 멀어진 계기가 되었던 사연과 의심으로부터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최문규의 설계 방법 등의 건축 이야기까지, 책에는 그들의 꾸밈 없는 진솔한 이야기가 꽉꽉 눌러 담겨 있다.
“교수님, 설계가 안 돼요”라는 학생의 푸념에 최문규는 “미안한데 어떻게 하나? 나도 설계가 잘 안되거든”이라고 대답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들어온 대학에서 몇 해 건축을 배웠다고, 설계가 쉽게 될 리는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입을 모아 훈련의 필요성을 말한다. 운동이나 악기처럼 설계도 훈련이 필요하고, 훈련을 통해 습관을 길들여야 한다고. 창작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결정을 마주해야 하는 건축 설계의 길에서, 그 결정을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해 나가라고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말한다.
의심과 질문은 한 쌍이고, 거기에 새로운 생각과 실천의 힘이 더해지면, 계속 설계할 힘이 생긴다. 편안한 대화가 전하는 두 전문가에게서 나와 닮은 고민을 발견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에서 한 발짝 물러나 의심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