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송은빌딩
ST International HQ and SONGEUN Art Space
헤르조그 앤 드 뫼롱 | Herzog & de Meuron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서울에서도 가장 화려하기로 꼽히는 이 거리에, 강렬한 기하학적 형태로 단번에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물이 들어섰다.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 설계한 송은문화재단의 신사옥 ‘ST송은’이다.
송은문화재단은 1989년 설립된 비영리단체로, 지난 30여 년간 다양한 전시공간을 운영하며 국내외 작가들의 활동 무대를 마련해 왔다. 근래에는 공간 운영뿐 아니라 미술상, 전시 공모 등의 신진작가 지원 사업도 병행해 왔는데, 재단의 활동 반경이 넓어짐에 따라, 보다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전시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점차 커지던 상황. 이에 재단 측은 지난 2016년 헤르조그 앤 드 뫼롱과 함께 본격적인 신사옥 건립에 착수했고, 4년 반의 길었던 여정은 올 9월, 마침내 마무리됐다.
예술과 사람을 하나로 모을 방법은 무엇일까? 예술과 예술가를 위한 공간, 그러나 동시에 대중을 위한 공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의 설계는 이러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들이 생각한 핵심은 ‘ST송은’이 송은 재단과 서울 시민을 위한 새 문화 보금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 즉, 더 많은 대중을 예술의 현장으로 초대하고, 이와 동시에 역량 있는 한국 예술가들을 국제무대에 소개하는, 문화적 앵커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건축가는 신사옥이 들어설 지역 맥락과 문화, 환경을 디자인 모티브로 삼았다.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지역, 밀도도 높고 변화도 빠르며, 그만큼 규제도 심한 청담동 의 맥락을 반영하여, 날카로운 삼각형 매스를 제시했다. 매끈한 전면만 보면 평범한 고층 건물처럼 보이지만, 측면에서 보면 건물 뒤편으로 뻗어 나간 날렵한 대각선에 의해 형성된, 예리한 직각 삼각형 형태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분주한 거리를 마주하고 있는 전면은 그저 높은 콘크리트 벽일 뿐이다. 심지어 창도 두 개뿐이라 주변 건물들보다 더 폐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상업의 중심지, 번잡스러운 도로를 마주한 이곳에서, 비상업적 공간, 문화와 예술을 위한 정돈된 공간을 만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니멀한 전면 외벽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밖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개방적인 공간들이 펼쳐진다. LED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메인 로비와, 그 옆으로 이어지는 정원까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불투명한 전면벽과는 달리, 후면 벽은 대부분 커튼월로 되어 있다는 점도, 실내 공간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서쪽에는 지하로 연결되는 자동차 진출입로가 있다. 나선형 경사 램프로 진입하면, 지하 5층까지 기계식 주차 설비를 이용하여 약 70대가량의 승용차를 수용할 수 있다. 내부에서는 나선형의 열린 구조가 지하 갤러리와 로비, 2층으로 올라가는 주 계단, 갤러리까지 관통하며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열린 전시 공간을 형성한다. 빛과 소리를 비롯해 다양한 자극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멀리서 보면 형태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멀리서는 느낄 수 없었던 독특한 질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송은(松隱). ‘숨어 있는 소나무’라는 뜻의 재단 이름에서 착안하여, 낙엽송 합판으로 가로세로 1m짜리 거푸집을 만들어 소나무의 무늬와 결을 콘크리트에 담아낸 것이다. 이때, 나뭇결을 새긴 콘크리트가 자칫 거칠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양생 후에는 거친 면을 매끈하게 정돈하는 폴리싱 작업도 진행했다.
그 결과 자연스러운 투박함과 모던한 단정함이 공존하는 신사옥에서 방문객들은 시각은 물론 촉각으로도 건물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에 힘입어 도심지에 자리한 대규모 건축물은 휴먼 스케일로 전환되며, 도심 속 건축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좋은 선례를 제시하고 있다.
작품명: ST송은 / 위치: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92-9,92-10 / 건축가: Herzog & de Meuron / 책임 건축가: Jacques Herzog, Pierre de Meuron, Andreas Fries, Martin Knüsel (Partner in Charge) / 프로젝트 매니저: Eduardo Salgado Mordt, Florian Stroh, Keunyoung Ryu, David Nunes Solomon / 프로젝트팀: Valentin Abend, José Amorim, Pablo Garrido, Jorge Guerra, Jeff Jang, Ludwig Kissling, Alonso Mortera, Nicolas Mourot, Sorav Partap, Anna Salvioni, Ga In Sim, André Vergueiro / 협력 건축가: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 건설 관리: 한미글로벌 / 건축주: 송은문화재단 / 대지면적: 1,179m² / 건축면적: 642m² / 연면적: 8,167m² / 규모: 지하 5층, 지상 11층 / 설계기간: 2016~2018 / 시공기간: 2018~2021 / 완공년도: 2021년 / 사진: Iwan Baan(건축가 제공), 정지현(송은문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