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담 (越談)
에디터 전효진 차장 글 황혜정 편집 김예진
자료제공 소을건축사사무소
마을을 지나 완만하게 휘어져 오르는 길목 앞으로 성큼 마중을 나와 있다. 무채색을 한 정갈한 형상이 울창한 숲 가운데 얌전히 놓인 너럭바위를 떠올리게 한다. 땅 위에 무심하게 놓인 바위는 길을 타고 더 깊숙한 곳까지 느릿하게 흘러 들어간다. 그렇게 숲으로 무성하게 둘러싸인 막다른 땅까지 이르러 작은 또 하나의 바위를 툭 던져 놓고 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지어진 집으로, 좁은 콘크리트 포장 도로 끝에 위치한다. 마을 북쪽 끝자락의 숲과 바로 맞닿아, 아니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그 자리만으로도 충분히 포근하고 아늑하다.
주어진 땅은 아랫마을과 시선상 자연스럽게 분리된 위계를 만들며 남쪽을 향해 훤하게 조망하고 있다. 대지를 구입하기 전부터 조성되어 있던 석축 덕분이다. 집도 조망을 얻고자 주변 자연을 해하는 일 없이 고스란히 지켜 주며, 주변 자연 역시 집을 방해하지 않으며 아름답고 멋스러운 풍경들을 그대로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관계다.
언덕 위에 콘크리트 덩어리를 무심히 올려놓은 듯한 ‘본채’와 평평한 마당을 지나 숲이 시작되는 석축 위의 ‘별채’, 두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도로를 따라 경사가 완만한 언덕 위로 올라가다 만나는 첫 공간이 본채다. 나지막한 담장이 본채를 감싸는 동시에 작은 마당을 구획해 놓고 있다. 굵은 마사가 깔려 있는 안마당을 지나 꽤 넒은 포치를 통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포치를 가리는 가로 및 세로의 송판 무늬 콘크리트 담은 실제 건물 너비보다 길어 외부에서는 집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담장과 더불어 이어진 칸살 도어가 길과 면하는 전면부를 가리고 있어서 외부에서 안으로의 시선이 견고하게 차단된다. 반면, 실내에서는 닫힌 상태에서도 목재 칸살의 틈을 통해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풍경을 누릴 수 있다.
칸살 도어 옆으로 나 있는 도로쪽 콘크리트 담은 프라이버시를 위해 완전히 막혀 있지만, 세로로 한 줄 긴 틈이 나 있어 호흡을 꾀하고 있다. 자칫 답답할 수 있는 내부의 시선을 외부로 확장하고 외부의 자연광을 내부로 유입하는 방식으로 서로 관계 맺는 통로다. 전면부의 칸살 도어를 열면 칸살이 사라진 사각형의 프레임 안으로 정겹고 생기발랄한 풍경들이 소복히 담긴다. 가까이로는 아랫동네 이웃집들의 지붕이 옹기종기 앉아 있으며, 멀리로는 유연한 곡선을 그리는 산자락이 유유자적 흐른다.
별채는 진입 마당을 지나 돌계단 위쪽에 자리한다. 본채를 거쳐야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을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는, 외부와 시각적으로 분리된 공간이다. 외부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보니 전면부를 창으로 계획하여 남쪽으로의 개방감을 넉넉하게 확보하고 있다. 대지의 가장 끝자락이자 가장 높은 곳에서 앞으로 그리고 아래로 펼쳐져 있는 풍경을 막힘 없이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다. 본채의 지붕 형태를 단순화한 것은 별채의 조망을 방해하지 않도록 시각적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한 의도도 있다.
담 너머로 두 집이 오붓하게 관계 맺고 있으며, 집 곳곳에서 담장과 담장 같은 본채 너머로 하늘과 산과 마을과 조우하는 집이기에 ‘월담’인가, 싶다.
작품명: 월담 (越談) / 위치: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월산리 / 설계: 소을건축사사무소 / 대표건축가: 차대명 / 디자인팀: 차대명, 조진모 / 시공: 건축과환경 / 구조설계: 진구조 / 용도: 근린생활시설 / 대지면적: 807m² / 건축면적: 90.66m² / 연면적: 90.66m² / 건폐율: 11.23% / 용적률: 11.23% / 규모: 지상 1층 / 외부마감: 노출콘크리트 / 내부마감: 수성페인트 / 창호: 알루미늄 시스템창호 / 실내가구: 라왕합판가구(조래철 목공방) / 욕실: 포세린 타일 / 설계기간: 2021.5.~2022.8. / 시공기간: 2022.8.~2023.4. / 완공: 2023.4. / 사진: 김진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