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하늘이 고요하게 덮고 있는 땅이다. 그늘진 영역마저 햇살을 희미하게 머금은 듯한 깊고 묘한 기운을 낸다. 산과 하늘, 그 아래 나지막하게 펼쳐져 있는 지평은 속세에서의 셈법이나 이기利己를 잊게 만든다. 절로 순응하고 낮아질 수밖에 없는 풍광을 의식하며 집은 겸손하게 엎드려 있다. 아니, 고요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땅에서 스며 나와 있다.
투박하고도 단단한 물성의 덩어리가 동선을 이끄는 것으로 집으로의 여정이 시작된다. 외로움이나 고독을 감내하고야 얻게 되는 자유로운 영역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경계의 지점이고 전이의 공간이다. 대나무 숲 사이의 그늘진 길을 지나면서 바람이 우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해질 녘 석양이 잔잔한 못에 몸을 담그는 모습과 마주하며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자연에 슬그머니 스며드는 경험도 경이롭다.
공간을 전이시키는 매개의 영역은 갑작스러운 변주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붓끝을 떠난 수묵이 종이에 서서히 번져 나가듯 점차 접어들며 안식에 집중해 가는 식이다. 집을 들고 나는 과정 속에 땅을 싸고 있는 산과 하늘을 향해 집은 계속해서 열려 있고자 애쓴다. 덕분에 마당은 물론 침실, 식당, 다실, 욕실 등 집안 어디에서든 곡면으로 이어져 흐르는 산등성과 구름 몇 점으로 그림을 그리는 하늘이 바라다보인다. 그 열림의 순간은 공간에 모호한 경계를 만들며 땅이 가진 정취와 기운을 겸허히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동시에 적절히 닫는 태도를 잊지 않고 견지하고 있다. 한 장면으로 이어져 펼쳐져 있는 풍경에 공간마다 프레임이 이루어짐으로써 공간에 형성된 정적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둥그스름하고 자유로운 풍경을 가두어 두는 그 선이 만들어 내는 정취가 있으니, 고요함에 오롯이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집을 두르고 있는 벽은 지극히 간소하다. 반사된 빛과 그늘이 만들어내는 교묘한 마찰만이 해 지는 저녁부터 해 뜨는 아침까지 벽 위에 다양한 장면들을 나타낼 뿐이다. 햇살과 산그림자, 나무와 구름과 비바람이 그리는 음영은 집을 더 낮고 작은 소리로 땅과 자연에 동화되도록 떠민다. 그 단아한 풍취가 음미되는 곳이다.
작품명: 경주옥 / 위치: 경북 경주시 산내면 대현길 222 / 설계: 100A associates / 대표건축가: 안광일, 박솔하 / 참여 디자이너: 김수빈 / 면적: 118.04m² / 외부마감: 노출콘크리트 / 사진: 김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