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나루쉼터 ‘빛의 루’
에디터 전효진 차장 글 황혜정 디자인 한정민
자료제공 김재경건축연구소
머리는 하늘을 이고 품으로는 그윽히 풍경을 안고 있다. 완만한 곡면으로 우아하게 비상하듯 펼쳐져 있는 지붕이 그러하고, 경외하듯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울창한 나무들이 그러하다. 혹은, 땅이 머리가 되고 나무가 땅의 뿌리가 되어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낯설지만 동시에 경이롭기도 한 이 장면이 투명하게 열려 있는 유리벽을 통해 여과 없이 중계되고 있다.
경남 진주시에 조성된 공공의 쉼터 공간이다. 남강을 중심으로 북측에는 14세기에 지어진 촉석루와 국립진주박물관, 동쪽에는 경남문화예술회관, 남쪽에는 미래에 새롭게 탄생할 구 진주역사문화재생사업지가 위치한다. 대지가 이러한 축의 서편에 위치하는 만큼 전통 건축에 관한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크게 의식한 게 느껴진다. 주목하게 되는 것은 전통을 계승의 관점이 아닌 창조의 시작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공간은 ‘21세기형 촉석루’라고 불리며 전통에 관한 창의적 및 기술적 접근의 대안을 제시해 국내외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가장 강렬한 첫인상이 되는 요소가 촉석루 전면의 6개 기둥을 오마주한 여섯 그루의 나무다. 디자인 컴퓨테이션을 통해 기둥과 지붕을 연결하는 공포栱包와 같은 전통 건축의 가구식 구조 결구를 현대식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못과 접착제의 사용을 최소화한 채 나무 부재들의 결합만으로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구조체에 대한 시공자의 이해도와 시공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3차원의 도면으로 이루어진 조립 매뉴얼을 개발하고 증강 현실을 도입한 결과다. 전통 목구조가 현 시대의 공학 목재와 디지털 페브리케이션으로 새롭게 탄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과거와 현재의 하이브리드 건축으로 평가될 수 있다.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집’이 누각樓閣이다. 남강과 망진산 등 주변 자연은 물론 도시의 풍경을 동시에 관조하는 장소로서, 문과 벽이 없는 듯 전면과 좌우측 3면이 유리벽으로 처리되어 있다. 내외부 사이의 물리적 경계만 있을 뿐 시각적 경계는 없다. 덕분에 내부에서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외부의 자연 환경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다.
반대로, 내부가 외부로 고스란히 드러나며 나무 형태의 목구조가 입면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구조체는 내부 공간을 이루는 동시에 건물의 외관이 되는 형식이다. 가을밤에 남강에서 열리는 유등 축제에서는 열림의 개념과 존재감이 더욱 커진다. 내부 조명이 유리벽을 통해 환하게 빛을 발하면 건축 자체가 거대한 유등이 되어 남강을 비추는 축제의 장을 이끈다.
유일하게 막혀 있는 동쪽의 벽은 내진을 위한 방편이면서 아침 햇살이 그린 망진산의 나무 그림자를 담고, 오후에는 내벽에 석양으로 드리워진 나무 구조체의 그림자를 담는다. 벽 사이의 개구부를 통해 자연의 나무, 인공의 나무, 그리고 나무 그림자라는 세 가지 개념의 물성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촉석루가 몇 백 년을 지나 계속 발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특정 계층만을 위하던 누각 건축은 기술의 발전 및 공공성과 만나며 전혀 다르게 진화되었을지도 모른다. ‘빛의 루’는 그것을 상상하고 있다. 신개념 누각으로 ‘21세기형 촉석루’라 불리는 이유다.
작품명: 빛의 루 /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로 195 / 설계: 김재경건축연구소 / 설계팀: 김재경, 윤지수, 정나영, 김규태 / 용도: 근린생활시설 / 대지면적: 268,212m² / 건축면적: 109.98m² / 연면적: 119.19m² / 높이: 6.21m / 구조: 목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마감: 탄화목 SYP 사이딩, 알루미늄 지붕재 / 내부마감: 자작나무 합판, 화이트오크 합판, T30 삼나무데크 / 설계기간: 2020.12~2021.8 / 시공기간: 2021.8~202210 / 완공: 2022.10 / 사진: Roh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