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소원 기자
기사입력 2023-07-21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거 공간은 단연 ‘아파트’다. 전국 주택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63%나 된다는 수치만 봐도 그런데, 최근에는 너도나도 영혼을 끌어모아서라도 소유하고 싶은 재산가치 1순위의 타이틀까지 거머쥐었으니 말이다.
1970년만 해도 0.8%에 불과했던 아파트가 반세기 만에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살아가는 대표적 주거 유형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실로 놀라운 변화임이 틀림없다. ‘아파트 공화국’의 저자인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 역시, 한국의 아파트는 “전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주거 형태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처럼 아파트가 단시간 내에 우리나라의 대표적 주거 유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시작은 ‘효율’이었다. 급격한 산업화 물살을 타고 도시가 팽창하면서 주택을 대량으로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아파트였던 것. 1958년 성북구 종암동에 초창기 한국식 아파트가 건설됐고, 1962년 서울 마포에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가 세워졌다. 인프라를 가장 효율적으로 보급할 수 있는 고밀, 고층 아파트가 증가하며 상수도 보급률은 100%에 육박하게 됐고, 단지를 중심으로 한 대중 교통체계를 구축하면서 전반적인 주거 환경은 급속도로 향상됐다. 그 결과 아파트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고 살고 싶어 하는 꿈의 주거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아파트는 초기 아파트와는 기저에 깔린 개념이나, 평면 형태 등에서 상당 부분 달라졌다. 사람들의 생활 패턴과 양식이 달라지고, 가족 구성에서도 변화가 생기면서 규모나 배치, 구성면에서도 선호하는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파트를 만든 과학 역시 변화를 겪었다. 한국의 주거 문화를 뒷받침하는 과학도 독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한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아파트의 실체를 낱낱이 해부한 책 ‘아파트 속 과학’이 출간됐다. 아파트를 다룬 대부분의 책이 택한 사회적, 경제적 시선에서 벗어나, 과학 칼럼니스트의 시각으로 아파트를 이루는 모든 것들을 살펴보는 책이다.
책은 총 3개의 장, 30개의 주제로 아파트가 딛고 선 과학적 토대에 관해 이야기한다. 첫 번째 장 ‘세대’에서는 과학적인 시선으로 아파트 세대 안 구석구석을 관찰하고, 두 번째 장 ‘건물’에서는 세대 문밖으로 나와 건물에 어떠한 과학적 원리가 깃들어 있는지 살펴본다. 마지막 장 ‘단지’에서는 아파트 단지 안을 천천히 거닐며 과학의 향기를 느껴본다.
아파트를 지탱하는 핵심 물질인 콘크리트와 벽식 구조부터 창문 크기, 화단의 나무 한 그루까지 과학의 시선으로 아파트 구석구석을 탐색한다. 우리나라 아파트 수명이 왜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짧은지, 60억 원을 넘는 초고가 아파트마저 왜 층간소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 2000년대 초반 갑자기 우리나라에서 새집증후군이 대두한 이유가 무엇인지,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오른 아파트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작업자 6명의 목숨을 앗아간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등 수백, 수천 세대의 삶을 떠받치는 핵심 기둥은 ‘과학’임을 알려준다.
아파트는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어 지식의 대통합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지하 주차장의 조명 밝기 하나도 생리학과 범죄심리학의 논의를 바탕으로 결정해야 하고, 주거지의 적정 밀도를 계획할 때는 경제학과 심리학에 기반을 둔 균형 잡힌 분석이 필요하다. 그뿐일까? 물리학·화학·생명공학·지질학·공학·심리학·미학까지, 오늘날 수많은 학문의 성취가 아파트에 담겨 우리 삶의 공간을 만든다. 우리가 사는, 우리에게 친숙한 아파트를 다각도로 이해한다면 삶의 공간을 살피는 데 값진 지적 자산이 될 것이다. 과학 칼럼니스트가 쉽게 써 내려간 아파트 속 과학 이야기, 그 색다른 과학 집들이에 응해보는 것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