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집
에디터 전효진 차장 글 황혜정 디자인 한정민
자료제공 유방근
경사진 산비탈을 개간하여 층층이 만든 계단식 논인 다랭이논을 보듯 경사 지형을 따라 집터들이 앉아 있는 곳이다. 높은 산비탈이다 보니 멀리 조망되는 풍경이 근사하다. 동쪽과 남쪽으로는 넓게 열려 있어서 멀리 도시와 남해 바다가 환하게 바라 보인다. 서쪽으로는 밤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북향으로는 석축이 강하게 버티고 있다. 경사지를 평지로 만들기 위한 장치인 석축은 땅에서 나온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파른 지형과 풍경의 중간 즈음에 집은 태평하고 안온하게 자리한다. 꼭대기까지 가파르게 오르던 길이 다시 막다른 길을 향해 가파르게 내려가는 어느 즈음에 쉼표를 찍고 있는 느낌이다.
선형의 입방체, 이 한 마디로 설명될 수 있을 만큼 형태가 단순하다. 길지 않은 땅에 선형의 입방체가 안정적으로 다 들어가도록 살짝 구부려져 있다. 굽은 영역은 접이식 부채주름 같은 계단으로 구성되어 상층부로 오르는 동선이 되고, 진입 영역의 입방체는 필로티 형식으로 공중에 떠 있어서 진입 시 풍경의 틀이 된다.
진입부에서 터 안쪽을 향해 침실, 거실, 주방 및 식당의 배열로 선형의 공간이 이어지다가 식당 상부에 자리하는 손님방에서 멈춘다. 지층에 자리하는 거실과 주방 및 식당은 남향으로 나 있는 테라스를 통해 외부 공간과 이어져 있고, 상층부에 자리하는 침실과 손님방 역시 각각 별도의 발코니를 갖고 주변 풍경과 소통한다.
이른 아침 햇살이 잠을 깨우도록 상층부 동쪽의 벽이 없는 곳에 침실이 자리한다. 침실뿐만 아니라, 빛은 집안 구석구석에 표정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천창과 벽 곳곳에 흩어져 있는 빛구멍들이 빛의 농염을 조절하며 내부 공간의 분위기에 간섭한다. 계절마다 시간마다 각기 다른 일조량에 따라 공간의 표정이 변화되고, 덕분에 좁고 기다란 형태의 단조로운 내부 공간이 풍부하고 깊이 있게 연출된다.
재료 또한 단순하여 간결한 형태가 더욱 강조된다. 특히, 배경이 되고 있는 석축을 의식하며 거친 표피에 껍질을 벗긴 비활성화 콘크리트가 활용되어 있다. 마치 석축과 동일한 유전자가 표피에 이식된 듯도 하여 같은 땅에서 같이 나고 자라 오래도록 함께해 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 전해진다. 질감과 더불어 색감에서도 옅은 황토색을 유도하며 석축, 땅, 건축 공간 사이의 미장센이 완결되고 있다.
작품명: 계단집_Stairway House / 위치: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안봉리 1224 / 설계: 유방근 / 기본설계: 경상국립대학교 건축과도시 연구소 / 실시설계: 주.옛터건축 / 용도: 단독주택 / 대지면적: 1,060m² / 건축면적: 98m² / 연면적: 119m² / 규모: 지상 2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 구조 / 외부마감: 비활성화 노출콘크리트 / 사진: BodyBr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