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쳐져 있는 염전을 따라 하늘도 나지막하게 깔린 듯 보이는 곳이다. 하늘과 염전 사이를 갈대숲이 채우기 시작한 어느 즈음부터 집도 빈 여백을 따라 조금씩 자라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풍요롭고도 거친 자연의 변화무쌍한 색채에도 불구하고 나이 지긋한 그루터기처럼 혹은 무채색의 너럭바위처럼 제 목소리를 낮춘 채 앉은 형상이다. 색감도 형태도 고요하기 짝이 없으나 연륜에서 풍겨나는 평정과 운치가 주변을 지혜롭게 다스리는 듯 느껴진다.
전라남도증도 태평염전 외곽의 조용한 갈대숲에 자리하는 예술가의 집이다. 증도의 태평염전이 주최하고 램프랩이 주관하는 아트 프로젝트 ‘소금 같은, 예술’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986년 소금창고이자 염전 인부들 숙소였다가 장기간 폐가로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리모델링한 프로젝트다.
회색 시멘트 블록으로 질서 정연하게 나누어진 벽면은 모두 검게 그을려 있다. 외벽을 목재로 마감하고 표면을 인위적으로 검게 그을리는 방법으로 완성된 것으로, 조업 영역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던 과거 소금창고의 표면을 재현해 놓은 모습이다. 가공되지 않는 소나무 목재로 마감되어 있던 기존 벽면들이 오랜 시간 해풍과 볕을 견디면서 검게 변색되어 있던 장면에 관해서다. 까맣게 변색된 나무 벽의 질감과 색감이 장소의 풍경을 지배하는 요소라는 해석은 재현된 현재의 모습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건물 정면을 따라 90도 각도로 덧대어져 있는 CMU 조적벽은 지붕의 횡하중을 지탱하는 버트레스 역할을 한다. 동시에 단층의 기다란 수평 라인이 강조된 입면에 수직의 리듬감을 부여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이를 덮고 있는 지붕은 조심스레 슬쩍 올려 놓은 듯 가볍게 느껴진다. 기존 샌드위치 패널 위에 골강판을 덧대고 측면에서 얇은 두께를 노출시켜, 건물의 둔중한 매스가 얇은 판을 만나는 방식으로 최대한 가볍게 표현된 덕분이다.
내부 공간은 기존 건물의 레이아웃을 충실히 따르면서 필요한 요소만 덧붙여져 있다. 각 실마다 예술가들의 작업 영역이 되어 줄 테이블이 유난히 눈에 띈다. 가로 세로 1.6미터의 창이 외부로 돌출되어 있고, 그 창틀은 동시에 실내로 길게 연장되어 폭 1미터의 작업용 테이블이 되고 있다. 테이블 앞 창문의 롤스크린 역시 흥미로운 장치다. ‘실뜨기 롤스크린’으로, 도르래에 매달린 실을 잡아당겨 벽에 부착된 핀들에 삼각형, 지그재그, 별 모양 등 원하는 모양대로 감아 롤스크린의 높이를 조정하게 된다.
출입구는 외벽을 걷어내고 건물의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원래 방문이 있던 자리의 깨진 개구부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옛 미장 마감면에 새로 덧댄 스틸 파이프와 CMU 벽의 포개진 단면을 노출시켜 놓은,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장면이다. 라운지 입구의 외부 조명과 손잡이 등도 옛 건물의 낡은 재료와 분위기에 맞추어 특별히 디자인된 요소들이다. 지붕의 ㅅ, 처마의 ㅡ, 창틀의 ㅁ, 데크의 ㅡ, 칸막이벽의 ㅣ를 본떠서 ‘스믜집’인 이곳에서 낡은 건물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고 계승되고 있다. 아니, 최대한 보존되어 태평염전의 역사와 자연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를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