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無名 : 소설가의 집
한 층의 규모가 3평이 겨우 넘어 보인다. 크지 않은 그 공간이 4개 층으로 촘촘하게 쌓여 있는 모습이다. 집을 두르고 있는 외장에서는 거친 질감이 전해진다. 마치 단단한 껍질로 수직의 공간을 다부지게 싸매고 있는 듯한 그 느낌이 작지만 견고한 성과 같은 풍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질감과 달리 색감과 형태는 다분히 동화적이다. 파스텔 톤이 풍겨나는 붉은 갈색의 외관과 내부의 노출된 콘크리트와 목재가 따뜻하게 어우러진다. 사심을 품지 않게 되는 대지의 규모를 인정하는, 사심 없는 형태로 빌딩 숲 사이에 검소하고 조용하게 자라나 있다. 서울시 방화동의 좁은 골목 끝자락에 자리한다. 비교적 큰 건물들에게 둘러싸인 대지는 9평을 간신히 넘기는 크기를 하고 있다. 자칭 ‘사랑을 따르고 호기심이 넘치지만, 동시에 태도가 조심스럽고 감성적으로 예민한, 그리고 계획적이고 집요하지만 사실 겁이 많고 걱정이 많은 복잡한 아이’가 사는 집이다. 성을 에워싼 건물들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어쩌면 동화적일 수 있는 색감이 적용된 것은 그러해서다. 어른의 외형을 가졌지만 내면에 아이를 품고 있는 건축주를 닮기로 의도한 것이다. 그 아이는 소설가다. 글을 쓸 때나 간혹 일상생활 가운데에도 필요에 따라 건축주는 현실의 자신이 숨을 수 있는 일종의 ‘성’을 필요로 한 모양이다. 외부 혹은 현실로부터 지켜지는 작은 성이자, 지친 심신을 차분하게 보듬어 줄 안식처에 대한 생각들이 작은 규모에도 빼곡하게 담긴 것은 건축주의 간절함이 적극 반영된 것이다.
주어진 크기의 한계로 인해 각 층은 최소한의 기능을 가질 뿐이다. 1층 거실, 2층 드레스룸과 욕실, 3층 침실과 화장실, 4층 주방과 식당으로 각각의 공간은 맡은 기능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나아가 기대하는 기능을 넘어 작은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각각의 이야기들이 풍요롭게 펼쳐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 중심에 창이 있다. 창이 확장이나 조망의 장치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공간의 성격과 필요에 맞춘 키워드로서 빛의 강약을 서사적으로 조절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자연광과 환기가 필요한 영역에 끌어들이는 빛, 평온함과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빛을 구분하여 창의 크기와 배치와 형태가 결정되어 있다. 따라서 건축주는 자의적 선택을 통해 빛으로부터 숨을 수도 있고 빛 가운데로 드러날 수도 있다.
빛의 효과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4층이다. 4층은 건축주가 일상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식사 공간이자 오롯이 집필에 집중하게 되는 작업 공간이다. 옥상에 마련되어 있는 ‘빛 우물’에 모인 빛이 당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좁은 천창을 통해 유입되는 빛이 깊숙이 그리고 점차 확장되는 통로를 타고 흘러내려 4층에 가 닿으면 고요함과 평온함이라는 형용사가 공간으로 형상화된다. 그 장면이 비현실적이고도 따뜻한 감성을 유도하면서 묘한 공간감을 연출한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내부에서는 치열하기 짝이 없는 것이 도시에서의 삶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강해질 수밖에 없던 ‘아이’에게 집은 하루 동안의 크고 작은 전투가 끝난 뒤 지친 심신을 누이는 안락한 성이다. 9평 대지 위 작은 영역에 이토록 큰 안위와 안식을 채워낸다는 것, 그 즐거움과 만족을 탐닉한 작업이었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작품명: 무명無名: 소설가의 집 / 위치: 서울특별시 강서구 / 설계: 100A associates / 대표건축가: 안광일, 박솔하 / 디자인팀: 김동수 / 시공: 100A associates / 용도: 단독주택 / 대지면적: 30m² / 건축면적: 12.54m² / 연면적: 48.68m² / 건폐율: 41.8% / 용적률: 162.27% / 규모: 지상 4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마감: 테라코 사하라 /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테라코 사하라, 무늬목, 타일 / 완공: 2020 / 사진: 김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