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22-07-20
뮤지엄 건축 기행
직접 가지 않아도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을 볼 수 있는 시대다. 저 멀리 떨어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우피치 미술관도 구글 지도만 켜면 르네상스의 걸작들을 감상할 수 있고,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전국의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유산정보를 앉은 자리에서 통합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디지털 산업의 확산과 더불어 코로나19라는 시대적 상황이 문화를 즐기는 방식을 완전히 뒤엎은 가운데, 박물관에 가보자고 말하는 저자의 <뮤지엄 건축 기행>이 발간됐다. 직접 체험하는 박물관은 스마트폰의 작은 액정 속 세계와 무엇이 다른 걸까.
뮤지엄(museum)은 뮤즈(Muse)에게 바치는 공간(um)에서 비롯됐다. 뮤즈는 옛 고대 그리스, 각각 희극, 비극, 비가, 서정시, 서사시, 음악, 춤, 역사, 천문학을 관장한 아홉 자매 여신을 총칭한다. 아홉 뮤즈가 인간 세상에 개입한 영역들은 오늘날의 학문과 예술에 걸쳐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선택된 소수만이 접근할 수 있었던 학문과 예술이 시간이 흘러 민중에 공개되고, 구한말 첫 박물관이 들어선 우리나라도 점차 높아져 가는 학문과 예술에 대한 욕구만큼 전국 곳곳에 뮤지엄이 들어섰다. 저자는 뮤지엄을 찾아다니는 일은 스스로 배워 알게 되는 ‘자기 교육’과 같다고 설명한다.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는 제도화된 학교 교육이 아닌, 뮤지엄은 스스로 찾아가야만 내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앎이란 지혜, 지식, 정보 등을 포함해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지적 형태를 아우르는 우리말이다. 알고 싶어서 박물관에 간다. 그래서 뮤지엄은 앎의 잠재태(dynamis)인 것이다…(중략) 굳이 배우고 익히지 않아도 괜찮을 듯하다. 김영갑의 사진이나 전태일의 분신 또는 박경리의 한 줄 문장만이라도 마음속에 담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앎의 잠재태가 세상을 향한 의미 있는 현실태(entelecheia)로 자리 이동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여는 글에서
책은 저자가 직접 발로 걷고, 손을 놀리며, 냄새를 맡고, 귀로 들으며, 눈으로 본 26곳의 뮤지엄을 5개의 주제로 나눠 소개한다. 돌에서 자동차로 이어지는 인류 문명사를 다룬 <사물과 사람 사이>,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았던 조선의 식민 근대 문물을 담은 박물관에 대한 <토착과 강박>, 집단 기억과 탈집단 기억, 죽음의 기억, 인권의 기억, 산화한 기억을 말하는 <기억의 문제>, 끊임없이 진화해온 미학을 다룬 <아름다움에 대한 몇 가지 주제>, 마지막으로 역사를 기록해 온 문학 <시, 소설, 그림에 바친 공간>까지. 저자는 건축 역시 뮤즈에 귀속된다고 여긴다. 그렇기에 뮤지엄의 주제가 품고 있는 의미와 더불어 그것이 공간과 어떻게 어우러지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뮤지엄이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해소하는 공간을 넘어, 자기 배움을 통해 우리가 있는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 자문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역사, 인물, 공간, 건축가, 또 다른 시선 등 박물(Muse)과 관(um) 사이를 오가며 써 내렸다.
관람자의 자기 정체성 찾기 여정은 어떤 주제의 박물관을 관람할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의 현재와 내가 비롯된 과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로 확장되는 물음의 답을 찾으러 뮤지엄 여정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