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22-05-23
우리가 그려온 미래
한국 현대건축 100년
지난해 9월부터 2월 26일까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렸던 <우리가 그려온 미래: 한국 현대건축 100년> 전시의 도록이 발간됐다.
서울대학교박물관과 서울대학교 건축학과가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는 지난 100여 년의 한국 현대건축의 성과를 되돌아 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보는 장이었다. 이러한 전시 내용을 압축한 도록은 그 자체로 아카이브다. 192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단위로 정리한 연표로 시작하여, 1920년부터 2000년대 까지를 다섯 시기로 구분하여 58개의 작품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활발하게 활동 중인 건축가 31팀의 작업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12월 2일 열렸던 심포지엄의 발제와 토론 내용까지 충실하게 담아내며, 한국 현대건축의 지난 한 세기를 훑어본다.
첫 챕터는 1920년대 건축에서부터 시작된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한국건축의 시기 구분은 대개 개항을 기점으로 전통과 근대로 나누고, 해방 이전을 근대로 이후를 현대로 구분하는데, 이 전시에서는 왜 그 시작점이 1920년이었을까?
서울대학교박물관장이자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전봉희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금까지 건축은 문학이나 예술과는 달리, 도시시설의 일부로 보고 사용하고 소비하는 측면에 초점을 두어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1919년 박길룡과 장기인 두 사람의 한국인이 경성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건축전문직에 진출한 것을 기점으로 잡았다. 생산주의적 관점에 의한 구분이라 할 수 있다”
박길룡과 장기인이 설계한 건축물이 실현되기 시작한 1920년대부터, 해방 후 한국전쟁을 겪은 1950년대는 ‘학습과 모방’의 시기다. 일본인이 건축계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박길룡은 ‘화신백화점’, ‘보화각’ 등을 설계하며 선구자적 행보를 걸었으며, 장기인은 1958년 ‘건축용어집’을 발표하며 우리말 건축 용어의 토대를 구축했다.
청계천에서 한강으로, 성벽에서 그린벨트로 ‘서울’을 새로운 수도로 만드는 과정에서 도시가 수직, 수평으로 확장되던 경제 성장 시기인 ‘팽창과 모색’의 1960~70년대는 국가 권력에 가까운 유명한 건축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졌으며, 고층 건물과 더불어 도시 인프라의 발전과 서울타워와 같은 상징적인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1980년대 ‘개방과 탐구’ 시기에는 문화와 여가를 선도하는 민간 부분의 건축 물량이 증폭하며 설계사무소의 몸집이 커지고, 외국 건축가와의 협업이 활발해졌으며, 아파트가 우리의 주요 주거 형식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건축가와 사회’라고 부제를 붙인 1990년대에는 글로벌 문화 개방과 동시에 해외 유명건축가의 유입이 시작했으며, 우리 건축 사회의 체질 개선의 목소리를 내는 4.3그룹이 등장하기도 했다.
내재적 논리와 표현을 갖춘 건축가들의 급격한 성장이 바탕이 된 2000년대 ‘논리와 감각’ 시기에는 전통 건축의 현대적 모색, 기존 건축 유형의 새로운 해석, 도시 건축 작업 등이 등장했다. 이어서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국제적 기준에 맞추어 개편된 건축의 성과를 31팀의 건축가와 건축 엔지니어들의 작업을 살피며, 각 프로젝트를 미래의 투영물로써 바라보는 것으로 전시를 마무리 짓는다.
또한, 책 말미에는 발제자들의 발표와 토론 내용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읽고 해석하는 재미를 더한다. 또한, ‘나의 정체성’에 집중하여 자신의 건축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현재의 젊은 건축가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건축의 새로운 세계와, 동시대성에 대한 기대감을 비추며 마무리된다.
책 서두에 그려진 한국 현대건축 100년의 연표, 지금부터 그 연표에 어떤 모습의 미래가 이어 그려질지 자못 궁금하다.